[코우아오] ss, 학교au
손을, 손을 보는 게 무섭다. 손을 들어 그것을 보면 그 순간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을 것만 같다. 그럼 내가 여태까지 머리를 해준 여자들은? 그 여자들의 머리카락도 내 손에 묻은 피가 묻어 빨갛게 물들어 버렸나?
“우자쿠씨, 코우자쿠씨!”
“아, 무슨 말을 했지?”
“이제 제 머리를 해주실 차례잖아요.”
말을 건 여자는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생각에 빠지는 바람에 그녀를 눈치 채지 못한 거 같다. 일하는 중에 다른 생각을 하다니 손님에게 실례다. 그러기에 생각을 떨치려 하지만 그 불쾌한 생각은 점액과 같이 뇌에 들러붙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미안,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져서 오늘은 그만 접어야겠어.”
“네? 그럼..........”
“다음에 열면 꼭 너를 제일 먼저 해줄게.”
“정말요?”
“그럼!”
“감사합니다! 코우자쿠씨 돌아가셔서 꼭 쉬세요, 안색 정말 좋으세요.”
“신경 써주다니, 좋은 여자네.”
칭찬에 기뻐하는 여자를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일단 집에 가, 목욕하면서 손을 씻으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 코우자쿠?”
서둘러 가는데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오바가 있었다.
“아오바, 배달 중이야?”
“아니, 오늘 점장님 사정 때문에 일찍 퇴근. 너야말로 오늘 일 한다고 하지 않았어, 집 가기는 이른 거 같은데?”
“좀...... 일이 생겨서.”
“흐응...... 혹시 어디 안 좋아?”
아오바가 눈치챌 정도로 안 좋은가, 내 안색은.
“안 좋으면 우리 집 와서 할머니한테 봐달라고 해, 그리고 오랜만에 셋이서 저녁 먹자.”
“잠깐, 손잡지 마, 피가!”
아오바가 평소처럼 손을 잡은 거뿐인데 큰소리를 내버렸다.
“피? 혹시 손 다쳤어?”
아오바는 내 말에 당황해서 잡은 손을 들어 확인해보았다.
“아무것도 안 묻었는데.....?”
아오바의 말에 그의 손에 잡힌 자신의 손을 보니 정말 손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깨끗했다.
“아오바는 대단하네.”
“갑자기 뭔 소리야?”
“그보다 오늘 저녁은 뭐야, 타에씨의 요리 기대되네.”
손에 피 따위 묻어있지 않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확인하는 게 무서웠다. 그런데 아오바는 단 한마디로 그걸 나에게 인식시켜 줬다. 아오바와 플라티나 제일을 다녀온 후 아오바가 나를 받아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렇게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게 됐지만 가끔 내 안의 죄책감과 기억들이 나를 괴롭힌다. 만약 아오바가 내 곁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당장이라도 내 안에 새카만 기억에 먹혀 미쳐버리지 않을까.
코우자쿠 교생, 아오바 고등학생
교탁 주변이 소란스럽다. 요 며칠간 그래, 반 아이들은 모두 익숙해졌지만 아오바는 그걸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소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의 코우자쿠, 이번에 새로 온 교생 선생님이자 아오바의 소꿉친구이다. 사실 소꿉친구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같이 지낸 시간은 적었다. 어렸을 적 코우자쿠 집이 아오바네 옆집으로 이사와 친해진 계기로 코우자쿠가 어린 아오바를 잘 돌봐줬지만 몇 년 안 돼 집안 사정에 인해 코우자쿠는 다시 이사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 연락을 주고받거나 하지 않아 각자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고 살았는데, 갑자기 코우자쿠가 아오바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교생으로 온 것이다. 코우자쿠가 아오바가 다니는 고등학교, 그것도 아오바 반 담당이 된 건 지극한 우연으로 처음 온 날 코우자쿠 소개를 할 때 아오바는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버렸다. 코우자쿠도 아오바를 알아봤고, 그날 코우자쿠는 아오바 집으로 찾아가 오랜만에 같이 식사하며 여태까지 이야기를 했다.
코우자쿠는 자주 아오바 집의 저녁 식사에 참가하고 심지어 아오바의 집에서 자고 가기도 했지만, 학교에서는 아오바를 다른 학생들과 다르지 않게 대했다. 선생이 특정 학생을 편애하고 아끼는 게 보기 좋은 일이 아닌 걸 아는 아오바는 머릿속으로는 그 상황에 대해 이해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섭섭했다. 어렸을 적 자신만의 영웅이었던 코우자쿠가 모두의 인기인이 된다는 건 어린애 같지만 역시 쓸쓸하다.
특히 옛날부터 코우자쿠는 여자들에게 상냥했고 당연하게 그런 코우자쿠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상냥하고 잘생긴 남자를 안 좋아할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 그리고 당연히 지금도 바뀌지 않은 성격 덕에 코우자쿠는 여학생들의 인기는 물론 여교사들에게까지 인기가 있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 후 시간만 나면 여자들은 코우자쿠 곁으로 몰려들었고 그의 주변은 항상 소란스러웠다.
* * *
“그래서 걔가”
“아오바, 잠시만 와 볼래?”
“........... 코우자쿠 선생님 지금 꼭 가야 하는 거예요?”
“잠시만이면 되니까.”
아오바가 친구들과 잡담을 하고 있는데 코우자쿠가 아오바를 불렀다. 친구들과 한창 즐겁게 이야기 중이었기에 아오바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코우자쿠가 킬러스마일을 지으니 아오바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코우자쿠한테 갔다.
“집에 물건이 없어서 그러는데 빌리러 갈 겸 오늘 아오바 집에서 저녁 먹으러 가도 될까?”
“......... 할머니한테 문자로 알려둘게요.”
“고마워.”
아오바는 다시 친구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 대화에 끼려는데 수업 종이 울렸고 친구들은 각자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수업이 시작됐지만, 수업 중 아오바의 머릿속은 코우자쿠가 방금 한 행동에 대한 의문이었다. 코우자쿠가 그런 행동을 한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갑자기 불러내서 가보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코우자쿠를 무시할 수도 없는 게 코우자쿠도 일단은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결국, 매번 코우자쿠가 사소한 이야기를 한다는 걸 알아도 부르면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생각해도 결론이 나지 않기에 아오바는 오늘 방과 후에 담판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방과 후, 학생들의 하교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각에 코우자쿠는 교무실에서 나왔다. 아무도 없을 거라 예상했는데 교무실 맞은편에 아오바가 서 있었다.
“아오바 여태 집에 안 간 거야? 타에씨가 걱정하지 않아?”
“내가 무슨 초등학생인지 알아, 그리고 일단 할머니한테 코우자쿠랑 간다고 연락했어.”
“그럼 다행이고, 혹시 내가 오늘 너희 집 간다고 해서 기다린 거야? 먼저 가도 상관없었는데.”
“그거 때문에 기다린 거 아냐.”
“그럼?”
아오바는 왠지 모르게 우물쭈물하는 거 같더니 머리를 한 번 긁고 말을 했다.
“코우자쿠, 요즘 나한테 무슨 불만 있어?”
“응?”
“요즘 사소한 거로 계속 나 불러내고, 괴롭히는 거야?”
“아, 그거.....”
코우자쿠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는 아오바에 비해 코우자쿠는 아오바한테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으면 말해, 유치하게 굴지 말고.”
사실 아오바도 코우자쿠가 그런 짓을 하는 쪼잔 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이외 다른 이유를 모르겠기에 하는 말이었다. 아오바의 말이 끝난 후 코우자쿠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웃지 않는다고 하면 말할게......”
“뭐?”
아오바는 코우자쿠의 말을 이해 못 했지만 일단 이야기는 들어봐야겠다 생각했다.
“안 웃을 테니까 말해봐.”
“아오바가........ 다른 사람하고 있는 게 질투 나서......”
“질투.......?”
아오바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거 같아 그 단어를 따라 말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의 아오바는 친구도 있고, 주변에 아는 사람이 많은데 그 사실이 씁쓸해.”
“하........”
“어렸을 때 아오바 주위에는 나밖에 없었고 나랑만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이랑도 친하고, 그 사람들하고 같이 있는 모습에 질투해서..........속 좁아 보이겠지만 그래서 볼 때마다 불러낸 거야.”
코우자쿠도 똑같았다. 아오바가 코우자쿠가 더는 자신만의 영웅이 아니게 된 게 섭섭하고 다른 사람과 있는 걸 질투한 거처럼, 코우자쿠도 같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오바는 여태까지 가슴이 막힌 듯한 답답함이 사라지고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웃지 않는다고 했잖아1”
“하하, 미안 코우자쿠.”
아오바는 코우자쿠의 손을 잡았다.
“나도 코우자쿠랑 똑같은 기분이었어.”
“아오바?”
“옛날과 같이 나한테는 코우자쿠가 코우자쿠한테는 내가 특별한 거야.”
아오바의 말에 코우자쿠의 눈은 커졌고 아오바는 미소를 지었다.
“아직 저녁까지 시간 남았으니까, 우리 둘이서 데이트하다 집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