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는 중 린이 아처에게 물건 전달을 부탁받아 식사 후 정리를 빠르게 했다. 린은 아직 고등학생이라 학교에 다니며 마술 공부도 해야 해서 바쁘니 사역마인 아처가 이런 심부름을 가끔 하게 된다. 정리가 끝나고 부탁받은 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챙겼다. 고양이가 보자기를 물고 다니는 걸 보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겠지만 저녁에는 주위도 깜깜해서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마을에서 벗어나 국도를 따라가면 나오는 숲, 아인츠베른 숲에 물건 수령자인 이리야가 지내고 있다. 아처가 숲 근처에 도착했을 때 승용차 한 대가 멈춰있는 게 보였다.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고장이 난 거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아처는 안 좋은 느낌이 들어 빠르게 숲 안으로 들어갔다. 숲 입구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서 소란스러운 대화 소리가 들렸다. 아처는 나무 위에 몸을 숨기고 대화하는 자들을 살펴보았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들로 아무래도 술을 마신 거 같았다. 아처는 한숨을 쉬었다. 아인츠베른의 숲은 일반인이 실수로도 성에 오지 못하게 여러 마술 장치가 설치돼 있다. 덕분에 성에 찾아오는 일반인은 없지만, 괴담 같은 게 생겨 가끔 이렇게 담력시험을 하러 오는 어린놈들이 있다. 장치가 발동해서 적당히 쫓겨나겠지 하며 아처는 숲 안으로 가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느낌이 안 좋은데 정말 들어가야겠어?”
“에이,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겠냐? 쿠훌린, 너 설마 겁먹은 거야?”
“겁 안 먹었어! 그냥 정말 이건 느낌이 안 좋다고 차라리 내가 쏠 테니까 술이라도 더 마시러 가자.”
“너 맨날 돈 없다고 그러면서 웬일이냐?”
“너 운을 생각하면 신뢰성이 없는데?”
“운하고 감은 다른 거잖아!”
“너희들이 떠드는 사이 내가 일 번으로 간다!”
소리치며 한 명이 숲 안쪽으로 뛰어들자 다 같이 뛰었다. 그리고 맨 앞 청년이 밟은 곳에서 아처 눈에만 보이는 빛이 나며 장치가 발동됐다.
“으아아아악!!”
“뭐, 뭐야!”
“오,오지마!”
“살려줘!!”
“야,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청년들이 허공에 손을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는 게 환각 계열 함정인 듯하다. 쿠훌린은 먼저 뛰어간 청년보다 다행히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환각 범위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대로 청년들은 숲 밖으로 도망갈 거고 성으로 가면 수정구슬로 상황을 본 이리야가 자신에게 투덜거릴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처는 가던 길을 가려는데 도망가는 청년 중 한 명이 쿠훌린과 부딪혔다. 쿠훌린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지며 도랑에 떨어졌다. 떨어진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거 같은데 청년 중 누구도 제정신이 아니라 쿠훌린을 챙기지 않고 숲에서 뛰쳐나갔다. 쿠훌린 혼자 버려져 숲에 쓰러져있는 상황이 되어 아처는 당황하며 나무 아래로 내려갔다. 살펴보니 숨은 제대로 쉬고 피가 나지는 않고 뒷통수에 혹이 난 정도의 외상이었다. 하지만 내상은 알 수 없으니 아처는 쿠훌린이 깰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 * *
쿠훌린은 찬바람에 눈이 떠져 몸을 일으키려는데 두통이 느껴졌다.
“아파라~”
“일어났군.”
자신은 분명 대학 동기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눈앞에 있는 처음 보는 사람이 있어 쿠훌린은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누구고 왜 여기 있는지는 기억하나?”
“후유키 대학교 교환학생 쿠훌린, 분명 대학 동기들하고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곳은 술을 마시던 가게가 아니다. 가게는커녕 마을도 아닌 숲 안이었다.
“...... 다 같이 취해서 담력시험을 한다고 차를 타고 이 숲에 왔지.”
“불법 침입에 음주 운전까지 하다니, 어이없군.”
“불법 침입?”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숲은 사유지다. 엄연히 주인이 있는 곳이지.”
사유지라는 말에 쿠훌린이 얼른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술김에 장난이라도 법에 걸리는 문제인데.”
“나에게 사과해도 의미가 없다. 난 주인이 아니니.”
“그렇다면 왜 이 숲에?”
“이 숲 주인에게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네가 쓰러져있더군. 운이 좋은 편이야, 그대로 밤새 누워있으면 동사는 아니더라도 심한 감기나 독감에 걸렸다.”
“정말 몇 번 감사해도 모자라네요.”
“존댓말은 내가 불편하니 안 해도 된다.”
“나도 이쪽이 편하니 말은 놓지. 그런데 이름을 알 수 있을까? 제대로 감사하는데 이름도 모르는 건 아닌 거 같아서. 난 쿠훌린, 그쪽은?”
“...... 아처”
아처는 고민하다, 사역마로써 불리는 명칭을 말했다.
“다음에 내가 일하는 카페로 오면 답례를 할게, 아처.”
“상태를 보아하니 괜찮은 듯하고 숲에서 나가도록 할까?”
“아처는 숲 주인한테 볼일 있는 거 아냐?”
“오래 걸릴 일이 아니니 너를 숲 입구까지 데려다준 후 해도 된다.”
아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고 쿠훌린도 그 뒤를 따라갔다. 아처는 분명 이리야가 이 상황을 수정구슬로 보고 있을 거 같아 양해 부탁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10분 되지 않아 도로가 보였다. 쿠훌린은 조금 흥분해 아처를 제치고 먼저 숲을 나왔다.
“아, 내가 일하는 카페 위치는 마을 외곽에 있는 조용한 곳인데...”
쿠훌린이 뒤돌아봤을 때는 아처가 이미 고양이로 변해 나무 위로 올라간 뒤였다. 쿠훌린은 주변을 둘러보며 아처를 찾다 숲에는 들어가지 않고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아처는 쿠훌린이 가는 걸 확인한 뒤 숲 안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