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제5회 케이크스퀘어에서 발매된 책의 웹공개입니다.
현대AU 수인물
토끼 수인 노이즈x인간 아오바
3월의토끼의 전작입니다.
Prolog.
"이걸 벌써 이해하게 되다니, 똑똑하구나."
그 사람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게 좋았다. 새로운 걸 배우는 그 자체도 좋았지만 배운 걸 잘하게 되면 칭찬을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게 좋았다. 그러기에 더욱더 열심히 했고 그 사람도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었을까, 그 사람은 머리 이외의 다른 곳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그 행위가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나는 그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는 나의 몸을 이곳저곳 만졌지만, 의미를 모르는 나는 그 행위를 당해도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막연히 머리를 쓰다듬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 집에 있었던 게 그 사람과 나뿐이었다면 그런 관계가 지금까지 지속하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지속하고 그것보다 더 심한 일들을 당했겠지만 나는 그게 무엇인지 지금까지도 몰랐을 거다.
그 집에는 그 사람의 아내도 있었다. 그날은 그의 아내가 외출하고 그는 평소와 같이 나를 만지려 했다. 그런데 아내는 두고 간 물건을 가지러 집에 돌아왔고, 여태까지 그녀가 몰랐던 일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이 나를 만지는 장면을 목격한 그녀는 분노에 찬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 사람은 허둥지둥 나에게서 떨어져 아내에게 변명을 시작하는데 아내는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나에게 다가와 나의 뺨을 때렸다.
뺨을 맞은 충격으로 나는 바닥에 쓰러졌고 그의 아내는 무자비하게 나를 때렸다. 때리면서 뭐라고 소리 질렀는데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난다. 아마 내가 나쁘다는 식으로 말했던 거 같다. 그의 아내에게 맞으며 시야가 좁아지고 의식이 흐려지는 가운데 나는 그 사람을 찾았지만, 그는 방을 나가고 있었다. 그게 그 집에서의 마지막 기억이다.
눈을 뜨니 나는 길가에 쓰러져있었다.
1.
귀여운 외모에 고양이 귀가 머리에 달린 여성이 계산대에서 물건 바코드를 찍고 있다.
"전부 해서 8900원입니다."
계산대를 사이로 여성 앞에 서 있던 아오바는 여성에게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주었다.
“만 원 받았습니다, 현금 영수증 필요하신가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아오바의 대답에 여성은 계산대를 두드려 거스름돈을 꺼내 아오바에게 건넨 후, 물건을 봉투에 차곡차곡 담아 아오바에게 건넸다.
"안녕히 가세요."
"네...."
밝은 인사를 받으며 아오바는 가게를 나왔다. 거리에는 방금 있던 가게와 같이 평범한 사람과 신체의 일부가 동물의 것인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신체 일부가 동물인 저 사람들은 '수인'이라는 종족이다. 옛날에는 요괴니 괴물이니 취급당해 숨어 살았지만 과학이 발달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 밝혀진 건 아오바가 5살 때 정도라 그렇게 먼일은 아니지만, 지금 와서는 수인 거리에서 당당하게 돌아다니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거리의 어떤 사람도 수인이 어디에 있건 신경 쓰지 않았다. 아오바도 그런 것보다 시린 손 때문에 얼른 자신의 자취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런 겨울날 장갑을 잊어먹고 나오다니 아오바 자신도 자신이 바보 같았다. 거기다 손에는 아까 산 물건들이 들어있는 봉투까지 들려있어 아오바는 지름길을 선택했다. 자취방으로 가는 지름길은 좁은 골목길이라 불편해 웬만하면 안 가는 길이지만 오늘은 너무 추웠다.
발걸음을 재촉하니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이 나왔다. 이 골목길을 지나면 그나마 밖보다는 따뜻한 자신의 자취방 건물이 나온다. 그걸 생각하며 아오바는 발걸음을 더 빠르게 하는데 골목이 막혀있었다, 그곳에 쓰러져있는 사람에 의해.
“아......”
사람은 너무 놀라면 사고가 정지한다고, 설마 이런 곳에 사람이 쓰러져있을 줄 상상도 못 한 아오바는 작은 감탄사를 내고 굳어버렸다. 봉지를 들고 있는 손이 시려와 아오바는 정신이 들었고, 쓰러진 사람의 상태를 확인했다. 가까이 가니 숨소리가 들려 살아있는 건 확실했다. 겉보기에는 피가 묻어있지 않지만, 그가 걸친 카키색 코트 아래에는 피가 나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떤 병을 가졌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동사한다는 생각에 아오바는 그 사람의 한쪽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막상 부축하는 자세가 되고서야 그가 자신보다 크다는 걸 깨달았다. 정신을 잃은 사람은 일반적 상태보다 무겁고, 거기다 자신보다 크니 평소에는 3분도 안 되는 거리가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고생고생해서 그를 자신의 자취방에 데려온 아오바는 그를 자신의 침대에 눕힌 후 천천히 살펴봤다. 코트의 후드를 뒤집어썼지만, 그 밑으로 보이는 금발에 하얀 피부. 아오바는 그가 아마 외국인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몸 상태를 자세히 보기 위해 코트를 벗기는데 후드를 벗기니 토끼 귀가 늘어져 있었다.
“수인.........”
귀의 색깔은 머리카락보다 연한 금색이었고 아오바가 그의 귀에 손을 살짝 대니 움찔했다. 귀는 반응했지만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벗긴 후드를 침대 옆 옷걸이에 걸었다. 딱히 눈에 띄는 상처는 없어 보여 그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아오바는 책상으로 가 컴퓨터를 켰다. 아오바는 검색창에 ‘토끼 수인’이라고 쳤고, 검색어에 따른 여러 글이 화면에 떴다.
한 글을 읽어 본 결과, 침대에 누워 있는 토끼 수인은 딱히 아프거나 문제가 있어서 귀가 늘어진 게 아니라 그저 ‘롭이어’라는 토끼 종류라 늘어진 귀라는 걸 알았다. 문제가 있는 게 아니란 걸 안 아오바는 안심하며 다른 글들을 읽어나갔다. 수인들은 기본적으로 식성이 인간과 같아서 토끼라고 해서 딱히 채소만 줄 필요는 없다고 한다. 또한, 병이 있거나 다쳤을 시 인간 병원에 데려가면 된다고 한다.
결론은 침대에 누워있는 수인이 깨어나면 평범한 음식을 주고 문제가 있으면 일반 병원에 데려가면 된다. 아오바는 복잡한 상황이 아닌 것에 안도하며 침대로 고개를 돌리니 수인이 침대에 앉아서 자신의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내 핸드폰!”
아오바가 놀라서 소리치자 핸드폰을 보고 있던 수인의 시선이 아오바에게 갔다.
“세라가키 아오바, 23세, ㅇㅇ대학교 학생.”
“그걸 어떻게.....?”
수인이 갑자기 자신의 개인정보를 말하기 시작해 아오바는 당황스러웠다. 자신은 분명 저 수인과 초면일 텐데 어떻게 자신의 정보를 아는 것인가.
“이거.”
수인은 핸드폰을 들지 않은 손에 아오바의 학생증을 들어 보였다. 침대 위를 보니 수인이 앉은 자리 앞에 아오바의 지갑도 있었다.
“당신 바보 아니야? 생전 본 적 없는 타인을 집에 데려와 놓고 이런 귀중품들을 그냥 두다니.”
“으윽.....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 몰랐어!”
“흐응”
이런 상황이 되니 아오바는 수인을 데려온 게 후회됐다. 그냥 경찰에 신고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이라도 신고할까 하고 핸드폰을 찾는데 수인 손에 들려있었다.
“....... 내 핸드폰 돌려줘.”
“싫은데.”
“뭐?”
“돌려주면 신고할 거지?”
“윽,”
머릿속을 읽은 듯한 말에 아오바는 당황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핸드폰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깨달았다.
“신고하면 곤란해?”
“.............”
현재 수인은 동물로 분류한다. 동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심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감옥에 갈 일도 없다. 신고한다 해도 주인에게 돌려보내 지거나 보호소에 보내지는데 이 수인은 무엇을 두려워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아오바는 수인을 쳐다보는데 수인은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이 좁은 방에 누가 같이 살 리는 없고. 당신, 혼자 사는 거야?”
“어, 어? 응.”
그런데 그 입에서 나온 말을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그럼 한동안 여기서 지낼게.”
“뭐?!”
“이전 있던 곳에 돌아갈 생각도 없고, 보호소에 갈 생각도 없어.”
수인의 말투는 아오바에게 허락을 받는 게 아니었다.
“당신이 날 주웠으니까 책임져.”
이것이 누가 주인이지 알 수 없는 애완동물과 동거하는 이야기의 시작이다.
2.
“어이, 어이.”
누군가 곤히 자는 아오바를 부르며 아오바의 몸을 흔들었다. 아오바는 일어나기 싫어 뭔가를 웅얼거리고 몸을 돌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이불이 확하고 들렸고, 이불이 들리며 차가운 공기를 접해 아오바는 정신이 확 들었다. 정신이 들어 눈을 뜨니 눈앞에 한 수인이 보였다.
“뭐야, 오늘은 주말이란 말이야......”
“아침밥.”
어제 자취방 앞 골목에 쓰러져 있기에 데려온 이 토끼 수인의 이름은 노이즈. 아오바의 의견 따윈 무시하고 아오바 혼자 살던 원룸 자취방에 눌러앉아 어젯밤 아오바의 침대를 빼앗았다. 덕분에 아오바는 바닥에서 잤는데, 그것도 모자라 지금 일주일에 두 번 그것도 돌아오기까지 5일이 걸리는 귀중한 주말에 아침밥을 달라는 이유로 아오바를 깨웠다. 아오바는 이 순간 노이즈를 데려 온 것에 막심한 후회를 했지만 일단 깼기 때문에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를 여니 역시 자취생인 만큼 안에는 별거 없었다. 하지만 아침에 약한 아오바는 지금부터 반찬을 만들 기력 따위 없어 냉장고 구석에 있는 식빵 봉지를 들었다.
자취생의 집에는 토스터 따윈 없기에 식빵 두 조각을 프라이팬 위에 올렸다. 그대로 가스레인지 불을 켜려다, 침대 위에 앉아있는 노이즈를 흘끔 봤다. 혼자면 아침으로 식빵 한 조각이면 충분하지만, 불청객이라도 식빵 한 조각은 아닌 거 같아, 다시 냉장고에 가서 계란 두 개를 꺼내왔다.
“노이즈.”
주방 구석에 둔 낮은 상을 꺼내 그 위에 토스트와 계란프라이를 올린 접시를 두고 아오바는 노이즈를 불렀다. 아오바가 부르자 노이즈는 상 앞에 와서 앉았다.
“아무리 아침이라지만 너무 간소한 거 아냐?”
“식빵만 주려다 계란까지 준거니까 고마워하라고.”
뭐라고 더 불평할 거 같았지만 의외로 노이즈는 불평을 더 하지 않고 계란프라이와 식빵을 먹었다. 식사를 끝내고 상을 치우는 데 노이즈가 겉옷을 걸치며 말했다.
“나가자.”
“응?”
“외출하자고.”
아오바는 상을 주방 구석에 놓고 어정쩡한 자세를 유지한 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 혼자 나가서 사고 나면 주인 당신으로 댄다.”
“준비할 테니까 10분만 기다려.”
수인이 동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수인이 사고를 치거나 문제가 생기면 주인이 벌을 받는다. 덕분에 아오바는 노이즈의 협박에 간단히 굴해 외출 준비를 했다. 밖으로 나오니 노이즈가 성큼성큼 걸어가 아오바는 서둘러 따라갔는데 도착한 장소는 백화점이었다.
“백화점에는 뭐 하러 온 거야?”
“옷 사러.”
“헤?”
생각해보면 노이즈는 달랑 몸에 걸친 옷만 있으니 옷을 사야 하는 건 맞다, 그 한 벌로 계속 지낼 수는 없는 법이니까. 아오바는 진열된 옷들을 천천히 보며 노이즈에게 어떤 옷을 사줘야 할까 생각했다. 무난하면서 경제적 타협점이 맞는 옷을 찾으며 아오바는 매장 안을 돌았다. 그러던 중 아오바의 눈에 세일하는 기모 후드가 보였다. 디자인도 괜찮고 가격도 금전적으로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거 같았다.
노이즈의 의견을 듣기 위해 아오바는 혼자 어디론가 가버린 노이즈를 찾았다. 10분쯤 돌아다녔을까, 한 매장에서 노이즈의 뒷모습이 보였고 아오바는 노이즈의 이름을 불렀다.
“노이즈.”
아오바의 목소리를 듣고 노이즈가 뒤로 도는데 그의 양손에는 다 여섯 개 정도의 종이봉투가 들려있었다.
“노이즈, 그거 다 뭐야?”
“뭐냐니, 옷이지.”
“돈은 어쩌고?”
“갖고 있었는데.”
노이즈는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아오바에게 보여줬다.
“그거 어떻게.....?”
“전 주인이 만들어 준 거야.”
수인은 법적으로 소유를 인정받지 못하고, 수인의 것은 주인의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니 보통 은행계좌나 신용카드를 수인이 가질 리가 없는데 노이즈의 카드에는 노이즈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세간에서 애완동물로 취급되는 수인에게 카드를 만들어 줬을 정도이니 아마 전 주인이라는 사람은 노이즈를 무척 아꼈을 것이다. 거기다 저렇게 많이 샀으면 돈을 꽤 썼을 텐데 전 주인이라는 사람은 얼마나 부자인 건가. 아오바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 노이즈는 신경 쓰는 기색 없이 다른 매장으로 걸어갔다.
아오바도 노이즈를 따라갔는데 이번에 들어간 매장은 잠옷 매장이었다. 이런 거까지 산다니 노이즈는 정말 본격적으로 자신의 집에서 살려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청객이지만 그렇다고 쫓아낼 수는 없기에 아오바는 그저 한숨을 쉬었다.
“아.”
아오바가 그러고 있는데 잠옷을 보던 노이즈가 갑자기 뒤를 돌아 아오바에게 다가왔다. 아오바는 노이즈가 뭘 말하려나 싶었는데 들고 있던 종이봉투 하나를 아오바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봉투를 받아 봉투 안을 보니, 아오바가 즐겨 입는 브랜드의 신상 자켓이 들어있었다.
“이거,”
“입주 뇌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그 말을 하고 노이즈는 다시 잠옷을 골랐다. 이런 걸 받으리라 예상 못 했던 아오바는 놀라면서도 살짝 부담스러웠다. 이런 걸주지 않아도 아오바는 노이즈를 내쫓거나 푸대접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받은 자켓이 저번에 인터넷 선전에서 봤을 때부터 갖고 싶었던 거라 거절의 말이 입에서 나오질 않았다. 이걸 어째야 하나 생각하는데 아오바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노이즈는 원하는 잠옷을 골라 계산을 하고 나왔고, 아오바도 같이 나왔다. 아오바의 손에는 자켓이 든 봉투 말고 종이봉투가 하나 더 들려있었는데 노이즈는 아오바도 뭘 산 거니 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짐들을 내려놓느라 몸을 숙였는데 몸을 일으키는 순간 노이즈 눈앞에 무언가 나타났다.
“뭐야, 이거?”
“뇌물 받았으니까, 입주 선물.”
눈앞의 물건은 토끼 인형이었고 아오바는 웃으며 말했다.
“나 학교랑 아르바이트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 적으니까 그동안 같이 있어줄 친구!”
3.
일주일간 노이즈와 지내며 아오바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노이즈는 채소를 잘 안 먹는다. 아오바는 대학교에 가야 하고 학교가 끝나면 저녁까지 알바를 하는데 그동안 노이즈를 굶길 수 없으니 반찬이나 적당히 먹을 걸 만들어 놓는다. 그럼 노이즈가 집에 있으면서 알아서 먹는데 채소 반찬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 남은 채소 반찬들이 어떻게 되냐면 버릴 수는 없어서 아오바가 먹는다.
버리지 않으니 음식을 낭비하는 거도 아니고 돈 문제도 환경 문제도 없지만 그래도 아오바는 신경 쓰였다. 노이즈가 채소를 안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신경 쓰였다. 외견상 노이즈는 성인이니까 그렇게 먹어도 이제는 성장에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역시 영양 잡힌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오랜만에 식사를 같이하는 토요일 점심, 메인을 토마토 파스타로 하고 샐러드와 피클을 준비했다. 식사하면서 노이즈를 관찰했는데 노이즈는 파스타를 먹으며 간간이 샐러드와 피클을 먹기는 했지만 먹는 양이 적었다. 일부러 채소를 더 먹도록 파스타 양을 적게 주었는데 그저 파스타만 다 먹고 식사를 끝냈다.
“있잖아, 노이즈.”
“왜?”
“너 편식해?”
“아니.”
“싫어하는 음식이라든지 있어?”
“아니”
“근데 왜 채소 안 먹어?”
아오바는 결국 직설적으로 물어봤다.
“먹는데?”
“먹긴 하는데, 잘 안 먹잖아. 오늘 샐러드랑 피클도 그렇고 주중에 보면 다른 반찬은 다 먹는데 채소 반찬만 남아있고. 아무리 성인이라 성장 안 한다 해도 균형 잡힌 영양 섭취는 중요하다고.”
“나 성인 아닌데?”
“........ 뭐?”
노이즈의 말이 아오바는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물었다.
“나 성인 아니야, 19살.”
10대, 노이즈는 10대라고 한다. 한참 먹고 자라야 할 나이.
“그럼 더 중요하잖아!”
“별로, 여태까지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먹었는데 당신보다 크다고?”
“윽, 그, 그렇긴 한데.......”
노이즈의 말에 아오바는 반박을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그래도 앞으로 더 자랄지 모르니까 제대로 먹어야 해.”
그렇게 말했지만 노이즈가 아기도 아니고 안 먹는 걸 억지로 먹일 수는 없으니 아오바는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그러다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 *
“이거 뭐야?”
“뭐긴 햄버그랑 볶음밥이지.”
“햄버그 단면에 여러 가지가 보이는데?”
“양파랑 당근 잘게 갈아 넣은 거.”
그날 저녁 아오바는 손이 많이 드는 식사를 준비했다. 여러 채소를 섞어 넣은 볶음밥, 양파와 당근을 갈아 넣은 햄버그.
“맛없어?”
“맛없지는 않은데......”
맛없지 않았다, 그러기에 노이즈는 그날 식사를 깨끗이 먹었다. 그리고 식사 도중 ‘너가 엄마야?’ 라는 말이 나올 뻔한 걸 가까스로 목구멍에 삼켰다.
4.
그저께부터 아오바의 노력으로 노이즈의 채소 섭취량이 좀 늘었다. 그리고 아오바는 학교에 가기 위해 전공 서적을 가방에 넣으며 채소를 안 먹는 아이를 위한 요리책을 빌려와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가방을 다 싸고 이제 집을 나서려는 데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누가 온다고 연락을 한 적도 없어 아오바는 초인종을 누른 사람이 누구일지 짐작도 안 갔다.
“택배 왔습니다.”
“네?”
“아, 내 거.”
요즘 인터넷에 뭘 주문한 기억이 없어 어리둥절한데 노이즈가 옆에서 말했다. 그 말에 멈춘 아오바를 대신해 노이즈가 문을 열어 택배를 받았다. 택배 기사가 가자 노이즈는 상자를 뜯었고 내용물을 꺼냈다. 그 상황이 굉장히 익숙해 보여 아오바는 노이즈에게 물었다.
“통판 자주 했어?”
“응.”
“우리 집 와서도 이거 말고도 시킨 거 있어?”
“꽤 있는데.”
요즘 집에 없던 것들이 보였고 아오바는 그것들이 뭔가 했는데 이것으로 수수께끼가 풀렸다. 수수께끼가 하나 풀린 김에 아오바는 하나 더 풀기로 했다.
“전부터 신경 쓰였는데 말이야. 카드 안의 돈, 전 주인이 계속 넣어주는 거야?”
“내가 버는 건데.”
“벌어?!”
일하는 수인들은 있지만 그건 직장 상사가 대부분 수인의 주인이라 직원을 고용하는 대신 데리고 있는 수인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수인이 고용되는 일은 거의 없기에 수인이 스스로 돈을 번다는 건 희소한 개념이다.
“어떻게?”
“게임으로, 게임 내 아이템이나 정보를 현금 거래하기도 하니까.”
건실하게 직장에 다니며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는 안 좋아보일지 모르지만, 확실히 그런 돈 버는 방법이 있긴 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노이즈는 아오바가 볼 때마다 매번 컴퓨터를 잡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저 노이즈가 게임을 좋아하는 정도라 생각했지 설마 그걸로 돈을 벌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잠깐만,”
그렇게 돈을 번다면 온종일 집에서 게임만 할 것이다.
“노이즈, 마지막으로 외출한 게 언제야?”
“저번 주에 옷 사러 갔을 때.”
그 소리는 마지막으로 나간 게 11일 전이라는 건가.
“....... 오늘, 아르바이트 점장님한테 말해서 쉴 테니까 저녁에 같이 나가자.”
“갑자기 왜?”
“마지막으로 밖에 나간 게 11일 전이라니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다 안 좋다고!”
“딱히 괜찮은데.”
“괜찮지 않아, 오늘 무조건 나갈 거니까 저녁에 옷 입고 준비하고 있어.”
아오바는 그렇게 말하고 문을 나섰다.
* * *
아침에 말한 대로 아오바는 점장님에게 부탁해 오늘 시프트를 빼고 집에 갔다. 집에 가니 노이즈도 나갈 준비를 끝내 논 상태라 아오바 가방만 내려놓고 집을 나왔다.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별로”
“기껏 나왔으니까 말해봐.”
노이즈는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그럼 게임센터.”
“나와서도?”
“그 이외에는 가고 싶은 데 없어.”
밖에 나오는 데 의의를 둔 거라 아오바는 어쩔 수 없이 노이즈를 게임센터로 데려갔다. 게임센터에는 슈팅게임, 리듬게임, 대전 게임 등등 여러 기기가 있었다. 노이즈는 거기 있는 게임을 거의 다 했는데 전부 랭킹에 들거나 고득점을 해 아오바를 놀라게 했다. 그러다 아오바랑 같이 대전 게임을 했는데, 그 게임은 아오바가 고등학교 때 자주 하던 게임이라 아오바가 이겼다. 그랬더니 지기 싫어하는 노이즈의 성격이 나와서 몇 판이고 다시 해서 그중 몇 번은 노이즈가 이겼지만 그래도 기분에 안 찼는지 계속 하자는 걸 다음에 또 하자고 겨우 달래 게임센터를 나왔다.
게임센터를 나와 둘은 근처에서 레스토랑에 갔다. 나온 김에 외식까지 하며 오랜만에 맛있는 걸 먹어 아오바는 좋았고, 노이즈도 이 상황을 즐기는 거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서 아오바는 다음에 같이 나올 때는 뭐를 할까 물었다. 그런데 노이즈가 또 게임센터라고 해서 아오바가 그거 말고 다른 것도 해보자며 웃었다.
“노이즈?”
그렇게 대화하면서 가는데 등 뒤에서 모르는 목소리가 노이즈의 이름을 불렀다. 그 소리에 노이즈가 반응해 뒤를 쳐다봐 아오바도 덩달아 보니 사오십 대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있었다.
“아아, 노이즈..... 많이 자랐구나.”
“...........”
자랐다는 단어를 쓰는 걸 보아 남자는 아무래도 노이즈의 어렸을 때 알던 사람 같은데 노이즈는 남자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노이즈 그때는 미안했단다, 그ㄸ.... ”
“가자”
“어? 어.”
노이즈가 남자의 말을 다 듣지 않고 빠르게 걷기 시작해 아오바도 그에 맞춰 빠르게 걸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아오바와 노이즈를 쫓아오지는 않았지만, 뒤에서 노이즈를 부르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아오바는 걸으면서 잠깐 남자 쪽을 보았는데, 노이즈는 그저 묵묵히 걸어가기만 했다.
집에 도착하니 아까까지 들떠서 대화하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가라앉아있었다. 노이즈는 바로 씻고 침대 위에 누워버렸다. 노이즈가 자는데 아오바 혼자 불 켜놓고 있기 뭐해 아오바도 일찍 자기로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무슨 소리가 들려 아오바는 깼다. 어렴풋이 뜬 눈으로 보니 사방은 어두웠고 아직 새벽이었다. 이런 새벽에 무슨 소리인가 출처를 찾아보니 노이즈의 신음이었다. 그걸 깨닫자 아오바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고 노이즈의 상태를 보았다. 아무래도 노이즈는 악몽에 시달리는 거 같았다.
“노이즈, 노이즈!”
아오바는 노이즈를 깨우려고 이름을 부르는 데 그저 신음을 계속 흘릴 뿐 일어나지 않았다. 부르는 것만으로 효과가 없어 아오바는 노이즈의 몸을 잡고 흔드는 데 갑자기 노이즈의 손이 아오바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신음과 섞여 말하던 이해할 수 없는 말 중에 똑똑히 들렸다.
“가지마.”
아오바는 자신의 손을 잡은 노이즈의 손을 자신의 반대쪽 손으로 잡아주었다.
“나는 어디도 안 가, 노이즈.”
꿈속에서도 아오바의 목소리가 들린 것일까. 아오바가 그 말을 한 순간 노이즈의 상태가 진정되기 시작했고, 조금 있으니 안정되었다. 그래도 아오바는 불안해서 노이즈의 손을 잡은 채 지켜보다 그 자세로 잠이 들었다.
5.
사흘 전에 그 중년 남자를 본 이후 노이즈의 상태가 이상하다. 그 날 밤, 손을 잡아준 후 밤에 악몽에 시달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얼굴색이 제대로 잔 거 같지 않았다.
‘가지마.’
아오바의 손을 잡으며 노이즈가 한 말, 그 말이 아오바의 마음에 걸렸다. 그 말은 무슨 뜻일까, 꿈속에서 누군가 노이즈를 두고 가는 것인가, 왜 그런 꿈을 꾸는 걸까, 사흘 전에 본 중년 남자와 관련 있는 것일까. 이 모든 것들이 신경 쓰였지만 아오바는 차마 노이즈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아오바.”
그런 생각에 잠겨 걷고 있는데, 등 뒤에 느껴진 가벼운 타격감과 목소리에 아오바는 정신이 들었다.
“코우자쿠!”
“여어,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면서 가.”
아오바를 부른 건 아오바의 소꿉친구이자 대학교 선배인 코우자쿠였다.
“들어보니까 요즘 주말에 동기들하고 잘 어울리지도 않는 거 같고 뭐 일 있어?”
“뭐...... 일은 딱히....”
방금까지 하던 고민의 주역인 노이즈가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아오바는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건 코우자쿠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거짓말인 거 얼굴에 다 쓰여 있어, 고민 있지? 방금까지 심각한 얼굴로 생각하던 주제에.”
코우자쿠는 작게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아오바 일이라면 능력껏 도와줄 테니까, 고민 있으면 말해.”
“응......”
코우자쿠에게는 미안했지만 아오바는 이번 일이 코우자쿠한테 말할 만한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아, 생각해보니까 여기 너 자취방 근처였지?”
“아, 응.”
“고민을 안 말하니,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라도 오랜만에 확인해봐야겠어.”
“뭐? 코우자쿠!”
코우자쿠는 그대로 아오바의 자취방을 향해 갔고 아오바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코우자쿠는 아오바의 자취방 앞에 도착했고,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다녀와...... 당신 누구야?”
“너야말로 뭔데 아오바의 자취방에 있는 거야?”
각자를 처음 본 코우자쿠와 노이즈는 바로 험악한 분위기가 되었다.
“우와아아아아, 코우자쿠 이건 사정이 있어서,”
“사정?”
“이, 일단 인사. 노이즈 코우자쿠는 내 소꿉친구이자 대학교 선배야.”
아오바가 중재를 하며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해도 전혀 좋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너 수인이냐?”
“그런데?”
“아오바, 이 자식 누가 맡긴 거야?”
“아니.... 좀 사정이 있어서 같이 살고 있어.”
코우자쿠가 노이즈를 노려보던 시선을 돌려 아오바에게 말하자, 아오바는 코우자쿠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사정이라니, 자취하는 너가 누구 챙길 여유 없잖아.”
“지금까지는 잘 지냈는데 말이지....”
“지금은 버틴 다해도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건 나중 이야기고....”
“일이 생기면 늦는다고,”
아오바는 코우자쿠의 팔을 잡고 그 자리에서 끌고 나왔다. 요즘 상태도 안 좋은데 그런 노이즈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지 않았다. 자취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오바는 멈추고 대화를 계속했다.
“코우자쿠, 왜 갑자기 노이즈한테 시비 걸고 그런 말을 한 거야?”
“너 고민, 그 녀석이 이유 아니야?”
‘윽......”
“역시...... 아오바, 사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수인을 데리고 산다니 애완동물을 기르는 거랑은 다르다고.”
코우자쿠의 말이 맞다, 언뜻 보면 수인이랑 사는 것이 동물을 키우는 거보다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이성이 있고 생각을 할 수 있는 만큼 더 힘들다. 수인을 데리고 산다는 건 사실 애완동물을 키운다기보다 사람을 데리고 사는 것에 가깝다.
“조언 고마워, 코우자쿠. 하지만 나 노이즈 버릴 생각 없어.”
아오바는 그 말을 하고 코우자쿠를 그 자리에 둔 채 자취방을 향했다. 자취방에 돌아가니 노이즈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미안, 노이즈 코우자쿠가 걱정이 좀 많은 편이라......”
“..........”
노이즈는 아오바를 보고 말없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아오바의 손을 잡았다.
“노이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오바가 깨닫기도 전에 노이즈는 아오바를 끌고 침대에 쓰러뜨렸다.
“으앗!”
“......... 아까 그 녀석이 말한 거처럼 버릴 거야?”
“그 녀석이라니 코우자.....”
아오바는 말을 끝마치기 전에 말이 끊겼다. 노이즈의 얼굴이 가까워지는 거 같더니 그대로 키스를 한 것이다. 열려있던 아오바의 입술 사이로 노이즈의 혀가 들어와 입안을 훑었다. 아오바는 노이즈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아오바는 숨이 점점 막혀왔다. 타액이 아오바의 입에서 흘러나와 턱으로 내려갈 때쯤 정말 한계다 싶었을 때 노이즈는 입술을 뗐다.
“그저 애완동물이 아닌 그 이상이면 안 버리겠지.”
노이즈는 아오바의 양손을 한 손으로 잡아 머리 위쪽으로 눌러 포박하고, 상의를 벗기기 시작했다. 코트 버튼을 풀고 안의 스웨터와 셔츠를 위로 올리니 맨살이 드러났다. 맨살에 닿은 노이즈의 손은 차가웠다. 그 차가운 느낌에 아오바는 키스의 후유증에서 깨어나 정신이 들었다. 이대로 가면 노이즈에게 덮쳐진다, 아오바는 그런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힘으로는 노이즈를 못 이길 거라 생각하는데 노이즈의 손에 눌린 양손에 무언가 닿았다.
이 감촉은 분명 저번에 아오바가 노이즈에게 사준 토끼인형이었다. 아오바는 망설임 없이 인형을 잡아 손목만 써서 인형을 노이즈한테 던졌다. 인형에 맞아봤자 아프지는 않겠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노이즈의 힘이 조금 풀린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오바는 노이즈를 밀어냈다. 아오바가 힘껏 밀어내자 노이즈는 큰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윽.....”
바닥에 떨어진 노이즈는 작은 신음을 냈고 아오바도 정당방위라지만 아무래도 이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이즈 괜찮아?”
노이즈는 비틀거리며 일어서 현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아오바는 그것을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상황을 이해해 흐트러진 옷을 추스르고 아오바도 나갔는데 노이즈의 모습은 이미 안 보였다. 노이즈는 아무것도 안 들고 나갔고 심지어 코트도 안 입은 채다. 이대로 노이즈를 밖에 두면 분명 감기에 걸릴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드니 아오바도 간단히 핸드폰과 지갑만 챙겨 나갔다.
* * *
한 시간 정도 뛰어다녔을까, 노이즈에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갑도 안 들고 나갔으니 멀리 갔을 리도 없고, 아까부터 눈도 내려서 눈을 맞고 있을 텐데 하며 마음이 다급해졌다. 혹시 집에 돌아오지 않았을까 기대하며 아오바는 골목길을 통해 자취방으로 가는데 노이즈와 처음 만난 그 골목에 노이즈가 앉아있었다.
“노이즈!”
“뭐 하고 있어 당신.”
“너야말로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뭐하냐니......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어서 길바닥에 앉아있는 거지.”
“집에 돌아오면 되잖아.”
아오바의 말에 노이즈는 비웃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헤에, 돌아가면 받아줄 거였어?”
“당연하지!”
“지금 받아준다 해도 언제 버릴지 모르는 곳에 돌아갈 리 없잖아.”
아오바는 문뜩 사흘 전 새벽이 생각났다. ‘가지마’, 그 말의 의미는 이건가.
“이전에 버려진 경험이 있는 거야? 저번에 만난 그 남자?”
“..........”
“그 남자를 만난 이후 너 상태가 이상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노이즈.”
“............ 첫 번째 주인이었어, 그 남자.”
“첫 번째?”
“태어나서 쭉 보호소에 있다가 7살쯤 나를 데려가 준 사람이지.”
고개를 위로 올리고 노이즈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날 데려온 이유는 아내 몸이 안 좋아서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였어. 아내와 주인 둘 다 상냥했지, 그리고 주인은 나한테 많은 걸 가르쳐 줬어, 읽기, 쓰기, 수학 등 정말 자식을 기르듯 가르쳐줬지. 근데 어느 날부터였을까, 주인은 아내가 없을 때 날 만지기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성추행이지.”
아오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노이즈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운 나쁘게 아내한테 들킨 거야, 아내는 모든 게 내 탓이라면서 나를 때렸어. 너무 아파서 주인을 찾는데 이미 그 자리에 없더라고. 그대로 맞다 기절했더니 눈 뜨니까 길바닥이더라. 일어나서 필사적으로 그 집을 다시 찾았는데 어려서 그런 건지 정말 멀리 갖다 버린 건지 못 찾았어.”
“그래서......”
“나중에 경찰에 잡혀서 보호소로 보내졌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찾으러 오더라고. 결국, 다른 집에 보내졌는데 이번에는 그 집 경제 사정 때문에 날 버린다고 하더군.”
전 주인에게 배신당하고 새로운 주인에게 또 버려진다니 노이즈의 심상을 상상하니 아오바는 가슴이 아려왔다.
“그래서 가출했어, 버려질 바에야 내가 먼저 나가 주지라는 생각이었지. 그 이후 당신하고 만나기 전까지 비슷한 걸 반복했어. 당신, 원룸에 살고 경제 사정 안 좋아 보이니까, 원래는 더 일찍 나갈 생각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나가지 뭐.”
“나는 널 버리지 않아.”
“지금 그런다 해도, 아까 그 녀석 말대로 나중에 안 그런단 보장이 어디 있어?”
“약속해,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버리지 않을 게. 본가에 돌아간다 해도 가족들을 설득해서 꼭 너를 데리고 살 테니까.”
아오바는 노이즈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한 번만 더 사람을 믿어봐.”
“믿으면 뭐가 이득인데?”
“그 믿음에 보답하려 내가 노력할 거라는 점?”
아오바는 손을 내민 채 미소를 지었다.
“같이 집에 돌아가자, 노이즈.”
노이즈는 조금 주춤하는 듯했지만 아오바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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