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관계는 그녀석이 먼저 시작했다. 2학년 가을, 아직 더위가 다 가시지 않은 그 시기에 그녀석은 나를 불러내 고백했다. 고백은 특별할 것 없이 그저 ‘좋아해, 야스토모.’ 그 녀석 입에서 나온 그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다음 말이 이어졌고, 그건 ‘나랑 사귀어줄래?’ 그것도 역시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다. 그 말들을 이해한 나는 그 녀석한테 머리 괜찮냐, 눈 삔 거 아니냐 등 막말을 쏟아 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게 눈매도 더럽고, 삐쩍 마른 몸에 입 더러운 나 같은 걸, 저 잘생긴 놈이 좋아한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농담밖에 더 안 되니까. 그래서 그날의 고백은 시시한 농담으로 치부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 이후 그 녀석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몇 번이고 고백해 와서 결국 첫 고백으로부터 한 달 반,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그 녀석의 끈질김에 백기를 들고 사귀기로 했을 때는 그 녀석의 사랑해, 좋아해 같은 낯간지러운 말들로부터 해방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
“야스토모, 사랑해.”
“무거워, 돼지 새끼야!”
그 말들은 사귄 지 1년이 넘은 지금도 이어진다, 거기다 앵겨 붇기까지 하고. 보통 연애 1년쯤 되면 그런 말 안 한다는데. 어깨 위로 둘린 팔을 풀려는데 이 자식 은근 힘주고 있다, 그렇다고 안 풀 주 아냐. 나도 힘을 주고 억지로 풀었다.
“그리고 좀 그딴 낯간지러운 말들 좀 그만하랬지.”
“에~~, 왜?”
“왜냐니, 낯간지러워서인 게 당연하지!”
“야스토모는 내 말 안 믿어주잖아, 얼마나 더 말하면 믿어줄거야?”
“그렇게 흔하게 말해버리니까 못 믿는다는 생각은 못 하는 거냐, 다음에 또 그 딴 말하면 명치 세게 한 방 맞을 줄 알아라.”
차라리 말을 못 믿는 쪽이 났지 내가 왜 중간부터 눈치채서, 진짜 나 자신 패고 싶다. 니 말을 무겁다고, 니가 사랑한다, 좋아한다 말할 때마다 무게에 눌려서 힘들다고. 아 진짜, 이러다 나 분명 이자식 말에 압사 당할 거야.
후기
양쌤이가 트위터에 아라키타 그린 거 올려서 그거 보고 글 쓰고 싶어져서 전부터 생각한 거 썼어요. 보통 좋아해, 좋아해 계속 말하면 못 믿는데 아라키타 경우 신카이가 진심인거 아니까, 말이 진심인거 아니까 그게 무겁다고 느껴버린다는 그런느낌입니다. 글 썼으니까 그림 그리는거다 양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