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아라키타는 혼자서 부실로 향했다. 이번 주에 당번이 되어 교실의 뒷정리를 한 게 늦은 이유고 후쿠토미나 토도한테는 사정을 미리 전해두었지만 그렇다고 천천히 갈 생각은 없기에 그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렇게 서둘러 가고 있는데 뒤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아라키타는 뒤를 돌아봤고 방금 지나온 계단 앞에 여학생이 주저앉아있었다. 어이어이, 안 그래도 늦었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라키타는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어이, 괜찮아?”
“응........”
다가가서 보니 여학생은 같은 반의 요시노였다.
“도와줄까?”
“아,아냐 괜찮.....윽!”
아까 큰 소리는 요시노가 계단에서 떨어지면서 난 소리였고, 그 사고에 인해 손목을 다쳤는지 요시노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종이를 집으려다 신음을 냈다.
“삔 거 같은데 무리하지 말라고.”
아라키타는 바닥에 널브러진 공책과 종이들을 집었다.
“칫, 안 그래도 늦었는데......”
한 손에는 요시노의 물건들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해서 세웠다.
“꺅”
“보건실까지 데려다 줄게.”
“아, 아라키타 다리는 괜찮아!”
“그래?”
요시노의 말에 아라키타는 팔을 풀었고 그래도 손목을 다친 건 확실했기에 짐들은 아라키타가 들고 갔다.
“골절이네.”
“네?”
“요시노양, 손목이 부러졌어.”
보건실에 가서 보건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부상은 생각했던 거보다 심했다.
“계단에서 떨어지면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고 했지, 분명 그때 손목에 무리가 갔을 거야.”
“아...... 그래도 손목이니까 글씨를 쓰거나 타자는 칠 수 있죠?”
“깁스하니까 그건 좀 무리일거 같은데.”
“그, 그럼 깁스를 해야 하는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요?”
“골절 자체가 언제 나을지는 병원에 가서 검사해야 알겠지만, 깁스는 보통 4~6주 정도는 해야 해.”
요시노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눈에 띠게 낙심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요시노양 다친 걸 기록해야 하니까 선생님은 보건실 안쪽에 있을게 뭔 일 있으면 불러.”
“네......”
선생님은 말을 마치고 가버렸고 그 자리에는 요시노와 아라키타만이 남았다.
“병원에는 제대로 가라.”
보건실까지 데려다 줬고 부활동을 가야 하는 아라키타는 이제 가려고 했다.
“잠깐만 아라키타.”
“응?”
“부탁이 있어.”
“뭐?”
“아까 짐 주워줄 때 봤지?”
아라키타는 아까 자신이 주웠던 종이들을 떠올렸다.
“내가 올해 학생 상담사인 거 알아챘지?”
“아, 뭐.......”
하코네 학교에는 2가지 상담 시스템이 있다. 하나는 상담 선생님과 대면을 하며 직접적 상담을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상담을 편지로 주고받는 식으로 학생 상담사가 해주는 것이다. 후자는 고민이 있는 학생이 상담함에 가명으로 고민을 써서 넣으면 상담사가 자기 생각을 써서 대답해주는 식이다. 만약 그 고민이 학생이 대답하기 힘든 것이면 전문가나 선생님을 이어주기도 한다. 주웠던 종이들은 편지와 같이 가지각색의 고민이 쓰여 있었고 그걸 보면 누구든 요시노가 학생 상담사인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라키타가 내 손목 나을 때까지만 상담사 일 대신 해줘.”
“뭐, 내가 왜?”
“학생 상담사는 2학년 2학기부터 3학년 1학기까지라 2학기 시작할 때 새로 뽑는데, 내가 손목을 다친 지금 새로 뽑으면 내가 상담사였다는 게 알려질 수도 있잖아.”
상담은 익명으로 이루어지고 상담을 하는 쪽과 받는 쪽 전부 무기명 원칙이다. 당연한 것이 누가 상담을 받는지 알면 그 사람이 자신의 고민을 안 다는 걸 알게 되어 거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발, 나 깁스 풀 때까지만.”
“윽....... 아, 알았어.”
아라키타는 결국 요시노의 부탁을 수락했고, 요시노는 상담을 할 때의 주의점을 설명해주었다. 답장은 무조건 타자로 쳐서 뽑을 것, 글씨체로 정체가 들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자신이 상담을 들어주기 힘든 건이면 담당 선생님께 전해 선생님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다 아라키타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대답을 상담함 옆에 대답함에 넣어두는 건 알겠는데 그러다 다른 사람이 가져가면?”
“너 조례 안 듣는구나? 거기 cctv 달려있어서 만약 다른 사람이 가져가면 알 수 있어. 그러니까 학생들은 자기 거만 가져가. 또 질문 있어?”
“일단은 괜찮은 거 같아.”
“그럼 일단 이번 건들 들고 가.”
아라키타는 요시노로부터 편지 몇 장을 받고 보건실을 나왔고 부실에 들어가기 전 편지들은 가방 안에 넣었다. 부실로 가니 시간이 많이 늦었기에 후쿠토미가 아라키타에게 왜 늦었는지 물었고 상담사 건을 빼고 사정을 말 하니 후쿠토미가 이해해주어 뒤늦게 연습에 참가하였다.
* * *
고된 연습을 마치고 기숙사 방에 돌아온 아라키타는 가방을 열고 편지들을 꺼냈다. 아라키타는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지 생각하며 편지들을 읽었다. 성적에 대한 고민,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학우와의 관계 등등 대부분이 학교에서는 흔한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아라키타는 어떤 편지에서 멈췄다.
글씨체를 보고 확신했다, 이 편지의 주인은 신카이다. 신카이의 숙제를 베끼면 대부분 답이 틀리지만 그래도 급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베끼느라 그의 글씨체는 알고 있다. 만약 고민 때문에 올해도 인터하이에서 달리지 못하게 되면 큰일이기에 아라키타는 앞의 어떤 편지보다 진지하게 읽었다. 경우에 따라 자신이 임시 상담사가 된 걸 알리게 되더라도 후쿠토미에게 알리고 고민을 해결할 각오로 읽었다.
‘상담사분께
안녕하세요. 편지를 쓴 순간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에게는 고민이 있습니다. 주위에 저를 생각해주는 좋은 친구들이 있지만, 친구들에게는 말하기 조금 힘들어 편지 고민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좋아한 사람이 있습니다, 흔하디흔해 보이는 사랑 고민이지만 지금의 저에겐 이게 제일 큰 고민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저와 달리 상냥하고 강합니다. 힘든 시기에 그 사람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고 지금도 그 사람이 저를 지탱해주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존재는 너무나 감사하고 그 사람과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겁쟁이 토끼’
응? 이게 끝? 편지를 다 읽은 아라키타는 어리둥절했다. 신카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건 알았다, 근데 그래서 어쩌라고? 그 사람한테 고백하겠다는 거야, 그 사람하고 사귀고 있는데 사이가 틀어진 거야, 결국 고민이 뭔데. 아라키타는 짜증이 나서 멀지 않은 신카이 방에 쳐들어가 신카이를 한 대 패주고 싶었지만 참고 이 편지에 답장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나 생각했다.
답장을 쓰며 아라키타는 살짝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신카이는 고민이 있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덕분에 고민이 있는 줄도 몰랐다. 분명 그 녀석이 숨긴 거도 있지만 그래도 그걸 눈치채지 못한 자신이 조금 멍청이 같기도 했다. 반도 다르고 부활동도 아라키타는 올라운더, 신카이는 스프린터라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공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거의 3년을 같이한 동료다 그런데 그런 신카이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 한건 역시 자신이 그 녀석을 신경 쓰지 못 한 거란 생각이 들어 자책했다.
하지만 섭섭한 이유는 그것이 아닌 다른 점이었다. 섭섭한 건 왜 후쿠토미, 토도, 자신과 같이 친한 녀석들을 두고 편지 고민 상담을 이용하는 것인가이다. 우리가 안 믿기는 건가? 토도 녀석은 시끄러운 녀석이지만 어디다 남의 고민을 말하고 다니는 녀석이 아니고 후쿠토미는 오히려 입이 무거운 편이다, 그리고 자신도 쓸데없는 걸 나불거리고 다니지 않는다.
그럼 왜 편지 고민 상담을 이용하는 것인가 생각하다 가장 근접한 답은 아마 우리가 도움되지 못 한다는 점일 거로 추측했다. 후쿠토미는 연애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그런 것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다. 토도는 팬클럽도 있고 여자들한테 인기 있지만 실상 그 녀석이 사귀고 있는 사람은 소호쿠의 마키시마, 남자이니 역시 연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경우 잘생기지도 않고 입은 사납고 여자들에게 인기도 없으니 자신이 신카이라도 자신에게는 연애 상담을 하고 싶지는 않으리라. 그런 결론이 나니 아라키타는 작게 한숨을 쉬며 답장을 썼다.
아마 이어서 다음 내용을 쓰겠죠....?
개인적으로 편지 쓰는걸 좋아해요.
그래서 페달 캐들도 편지를 쓴다면 어떨까 생각하다 나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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