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토리아라고 불린 금발 소녀는, 주황 머리 소녀가 차에 짐을 싣고 떠나는 걸 지켜봤다. 차가 멀어져 더 보이지 않을 때 아르토리아는 건물 안으로 돌아왔다. 아르토리아가 사는 이 건물을 고아원이다. 만 18세 이하의 보호자가 없는 아동을 양육해주는 곳. 방금 이곳을 떠난 주황머리 소녀, 리츠카는 퇴원 나이가 되긴 전에 입양되어 양부모의 집으로 갔다. 반면, 아르토리아는 퇴원 나이인 18세를 채웠다. 아르토리아는 입양되지 않았지만, 이전부터 후견인이 있어 퇴원하면 대학교를 진학하게 되었다.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에 맞춰 기숙사로 들어가기로 해서 이제부터 짐을 싸야 한다. 어차피 아르토리아가 대학에 가면서 헤어졌겠지만, 리츠카의 갑작스러운 입양으로 한 달 앞당겨진 이별에 아르토리아는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울적한 기분에 편지라도 쓸까 생각하며 자신의 방으로 아르토리아가 가는데 고아원의 원장님이 아르토리아를 불렀다. 원장실에 간 아르토리아는 전화를 받고 수화기 너머로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들렸다.아르토리아는 입양되지 않았지만, 이전부터 후견인이 있어 퇴원하면 대학교를 진학하게 되었다.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에 맞춰 기숙사로 들어가기로 해서 이제부터 짐을 싸야 한다. 어차피 아르토리아가 대학에 가면서 헤어졌겠지만, 리츠카의 갑작스러운 입양으로 한 달 앞당겨진 이별에 아르토리아는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울적한 기분에 편지라도 쓸까 생각하며 자신의 방으로 아르토리아가 가는데 고아원의 원장님이 아르토리아를 불렀다. 원장실에 간 아르토리아는 전화를 받고 수화기 너머로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입니다, 숙부님.”
“그래, 오랜만이다. 잘 지냈느냐?”
자신의 안부 따위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겠지만, 예의상 물어보는 인사. 아르토리아도 적당히 대답했고 그 뒤로 숙부는 자신의 사정을 주절주절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집안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자신이 하던 사업이 어떻게 망했는지, 전혀 관심 없는 이야기라 아르토리아는 숙부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적당히 반응했는데 숙부가 어느 순간 갑자기 정신을 붙잡는 말을 뱉었다.
“그 저택을 팔기로 했단다.”
“숙부님!”
“너와의 약속은 기억한단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집안이....”
부모님이 돌아가시자마자 모든 걸 뺏어간 집안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아르토리아 팬드라곤, 아르토리아가 태어난 팬도라곤 집안은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자 재력까지 갖춘 강력한 집안이다. 아르토리아는 그중에서도 본가, 집안을 이어갈 당주의 딸이었다. 아르토리아는 자신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팬도라곤가의 당주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상황은 한순간에 바뀌어버렸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자마자 친척들은 각자의 배를 채우기 위해 아르토리아를 물어뜯었다. 재산, 본가의 지위, 아르토리아 미래, 모든 걸 가져가 버렸다. 어린 아르토리아는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자란 저택만큼은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다. 자신이 자라오고 부모님과의 추억이 있는 저택만큼은 지키고 싶어 친척들과 협상을 했다. 결과 아르토리아가 성인이 되면 대가를 지불하고 돌려받기로 해 현재 통화 중인 숙부의 손에 넘어갔다. 그래서 아르토리아는 저택을 돌려받기 위한 능력을 얻기 위해 교육에 힘을 쓰고 대학에도 진학하는 건데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소식이다.
“마침 좋은 가격에 사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아, 가격도 가격이지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아, 세계적인 재벌이자 사업가인 길가메시이다. 운이 좋았지 이번 거래로 안면이 트이면 사업이 좋은 흐름을 탈 수도 있어.”
길가메시, 그 이름 이후로 아르토리아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어느 순간 전화를 끊었고 아르토리아는 고아원 밖을 달리고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한참 걸려 아르토리아가 도착한 곳은 고층빌딩 앞이었다. 건물의 창을 통해 아르토리아는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한 번 정리한 뒤 건물로 들어갔다.
“무슨 용무로 오셨나요?”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데스크 직원이 아르토리아에게 질문했다.
“길가메시님을 뵐 수 있을까요?”
“예약은 하셨나요?”
“야뇨....”
단정하지만 정장은 아닌 차림에 예약도 없이 대뜸 사장을 만나겠다는 소녀. 직원이 이상하게 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직원이 수화기를 드는데 아무래도 사장실에 연결해줄 분위기는 아니었고 여기서 보안요원이 온다면 아르토리아는 강경돌파를 할 생각이다.
“무슨 일이지?”
뛸 준비를 하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미디어에서 본 얼굴이 서 있었다.
“돌아오셨습니까, 사장님.”
직원이 일어서서 90도로 인사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이 건물의 사장, 길가메시였다. 길가메시는 아르토리아를 봤고 둘은 눈이 마주쳤다.
데스크 직원과 길가메시 뒤에 서 있는 비서로 추정되는 여성이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아르토리아는 길가메시를 따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응접실에 도착하자 길가메시는 의자에 앉았다. 비서는 차를 준비하러 갔고 아르토리아도 낮은 탁상을 사이에 두고 길가메시 건너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러 왔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팬도라곤 저택을 저에게 파십시오.”
“사지 말라는 게 아니라 팔라니 그 이유가 뭐지?”
“제가 부탁해 당신이 저택을 사지 않더라도 숙부는 다른 사람한테 저택을 팔겠죠. 그렇다면 차라리 경제적으로 부유해 짧은 기간 내에 저택을 매매하지 않을 사람이 소유해 저택의 소유권이 어디 있는지 확정할 수 있는 상황이 저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호오”
아르토리아의 대답이 틀리지 않았는지 길가메시는 이야기를 계속 들을 의향이 있어 보였다.
“그럼 언제, 어떻게 나한테서 매각할 예정이지?”
“저는 막 대학 입학에 인정된 몸, 당장은 힘들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걸맞은 지위를 얻어 번 돈으로.....”
“협상은 결렬이다.”
“네?”
길가메시는 아르토리아의 말을 잘라버렸다.
“제 이야기는 끝나지도 않았는데”
“첫째, 최단으로 대학을 졸업한다면 한 달이지만 저택을 사드릴 만큼의 지위는 언제 올라가고 돈을 모으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어느 정도 될 거라 예상하나? 내 예상은 아무리 짧아도 5~10년이군, 그렇게 오래 기다려줄 이유가 없다.”
“읏.........”
“둘째, 너에게 정말 그런 지위를 얻을 능력이 있는가? 그걸 지금 당장 알 수 없지. 그렇다면 대학 졸업까지 기다려줄 가치도 없다, 시간 낭비야.”
투자는 미래가 없는 것에는 하지 않는다. 정론이지만 아르토리아는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갈 수 없었다.
“능력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기회만 준다면!”
“지금 당장이라고? 하하하하하하!”
머리에 피가 올라 소리쳐버렸다. 아르토리아도 자신이 했지만 어이없는 말이었고 길가메시는 폭소를 터뜨렸다. 차를 들고 막 응접실에 돌아온 비서는 상황을 이해 못 하고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기회라...크큭.... 그렇다면 기회를 주지. 시두리.”
“네”
비서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생각해보니 최근에 너무 열심히 일한 듯하군, 휴가를 주지.”
“네?”
“후임은 걱정하지 말아라, 눈앞에 있으니.”
“그게 무슨 소리죠?”
“아르토리아 팬도라곤, 시두리가 휴가를 간 한 달간 내 임시 비서 겸 보디가드로 채용해 주지.”
시두리라고 불린 비서는 아르토리아를 바라봤고 아르토리아는 이해할 수 없는 흐름에 혼란스러웠다.
“한 달간 능력을 증명해보아라.”
2.
“비서의 업무는 주로 서류정리, 사장실 전화 받기, 회의 및 업무 스케쥴 조정, 업무정리입니다. 세세한 사항은 일을 하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르토리아는 시두리의 설명을 들으며 성실하게 노트에 받아적었다.
“사장님 다음 일정 때문에 비서 일 설명은 잠시 후 다시 할 테니 보안팀한테 가서 보디가드 교육을 듣고 오세요.”
시두리가 주는 메모를 받고 메모에 지시된 장소로 이동했다. 최상층 사장실 바로 밑층, 보안팀 본부. 문 앞에 도착해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허락을 받고 문을 열자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아름다운 청년이 서 있었다.
“네가 아르토리아지? 사정은 들었어. 보안 부서 부장이자, 너의 교육을 담당할 엘키두라고 해.”
“잘 부탁드립니다.”
엘키두가 손을 내밀어 아르토리아는 엘키두와 악수를 했다.
“너는 보디가드 일도 할 거라고 들었으니까 같이 일하게 될 경호팀을 소개해 줄게.”
엘키두의 안내에 따라 안쪽으로 가자 남자 네 명이 각자가 편한 자세로 업무 책상에 앉아있었다.
“주목, 새로운 사람이 온다는 건 사전에 이야기했지?”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된 아르토리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르토리아가 인사하자 4명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모였다.
“헤에~ 이 녀석이 소문의....”
“설마 이 시기에 신참이 들어올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런 말은 실례다.”
“예상 못 한 건 맞으니까요.”
“아르토리아가 불쾌해할 거 같으니까 잡담은 거기까지 하고 자기소개 해 줘.”
남자들은 각자를 보더니 파란 머리 남자부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쿠훌린이다, 대열에서 주로 전방을 맡지. 그리고 옆에 이 녀석은”
“자기소개는 스스로 할 수 있다, 난 에미야. 주로 담당하는 곳은 없고 전후방, 측면 상황에 따라 바뀐다.”
“로빈 후드, 후방 담당입니다~”
“저는 딜무드, 쿠훌린 선배와 같이 전방을 담당하거나 측면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경호 팀 리더이자, 주로 밀착 경호 담당. 저 4명과 나를 포함해 경호팀은 주로 5명이 움직여.”
엘키두는 마지막으로 다시 자신을 소개하며 팀 구성을 알려주었다.
“너는 비서도 겸할 거라고 들었으니까 한 달간 너의 업무는 원래 내 담당인 밀착이 될 거야. 그래서 내가 교육계가 된 거고. 너는 분명 고교 검도 전국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했지?”
“네”
“네 검술은 분명 대단하겠지, 검술로만 따지면 여기 있는 누구보다 강할 거야.”
“그정도까지는...”
“하지만 검술이랑 경호는 달라, 우리한테 경호대상이 늘어난 느낌이 들지 않도록 잘해주길 바라고 있어.”
말하는 엘키두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세이버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까와 같이 표정을 부드럽게 바꿨다.
*이후 표지 및 상세 정보 추가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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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훌린과 에미야는 이틀 정도를 노숙하며 최단 루트로 항구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마을은 왠지 모르게 어수선하고 활기가 없었다. 둘은 식사를 하기 위해 적당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음식을 시키며 종업원에게 쿠훌린이 물어봤다.
“왠지 마을 분위기가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었나?”
“아, 사실 얼마 전에 마을이 해적한테 습격을 받아서...”
“저런, 안 된 일이군... 나 같은 여행자가 오기엔 좋지 않은 시기였나?”
“아뇨, 얼른 털고 일어나야 하고 경제활동도 해야죠. 여행자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이곳은 그나마 마을 서쪽에 비교하면 피해가 적었고요.”
“거긴 피해가 심했나?”
“어우, 말도 마세요. 거긴 건물도 불타고 사람도 죽었대요.”
사람이 죽었다는 말에 쿠훌린은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여긴 운이 좋았나 보네,”
“여긴 서민들이 사는 곳이라 해적들이 할 게 없었죠. 서쪽은 부자들이 몰려있는 곳이니까, 아주 난리가 났어요. 그쪽 사람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우린 죽은 사람은 안 나왔으니 정말 다행이에요.”
종업원은 그 말을 하고 주방으로 갔고 얼마 안 지나 음식이 나왔다. 쿠훌린과 에미야는 음식을 다 먹고 식당을 나와 마을 서쪽을 향했다. 화가는 분명 돈을 벌어 저택을 샀다고 했으니 서쪽에서 살았을 확률이 높다. 서쪽으로 가자 확실히 피해가 눈에 띄게 심했다. 한 번 둘러봐서 가장 멀쩡한 건물은 반쯤 불탄 저택이었다.
“.... 쿠훌린, 다 이렇게 무너진 건물 중 특정인의 건물을 찾아 귀걸이 같은 작은 물건을 찾긴 힘들어 보인다만....”
“일단 화가는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으니까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부지를 찾아보지.”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걸어가며 부서진 건물 잔재를 줍고 있던 사람에게 물어보니 쿠훌린의 예상이 맞았다.
“이 마을에 실력 있는 화가가 있다고 듣고 찾아왔는데 혹시 어느 저택이 화가의 저택인지 아는가?”
“화가를 찾아온 거라면 바다에 가까운 저 저택이라네, 안타깝게도 화가는 이미 저세상으로 가버렸지만...”
알려준 방향을 따라간 곳은 어느 건물보다 심한 상태로 전부 불타 기둥이 몇 개 서 있는 정도였다. 잿더미 속에는 뭐하나 남아 있지 않아 보였지만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어 부지를 돌며 재를 뒤졌다. 에미야는 농기구를 투영해 땅을 긁으며 걸리는 걸 찾고 쿠훌린은 지팡이에 룬을 둘러 마력 반응을 이용해 탐색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러던 중 에미야의 기구에 무언가 걸려 주변을 정리해 보니 사람시체였다.
“아무래도 이 녀석이 그 화가인 거 같다만”
불에 타죽었는지 살해당한 후 시체가 버려져 시체상태로 탔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일하게 나온 시체라는 건 집주인일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남아 있는 건 시체와 건물 잔재, 옮기기 힘든 큰 가구뿐이니 그림이나 귀중품은 모두 해적들이 가져갔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시체라도 조사해줘, 에미야.”
에미야는 시체 위에 손을 올리고 마술을 발동해 시체의 구조와 상태를 살폈다.
“시체 내부에 귀금속이 탐지되지 않으니 죽기 전에 귀걸이를 숨기거나 삼키지 않은 거 같다.”
“그럼 가져갔네. 해적이라니 골치 아프군...”
“전투상황이 된다면 나도 조금이라도 돕도록 하지”
“아니 싸우는 건 나도 상관없는데, 해적 배가 침몰이라도 했으면 바다 속은 어떻게 찾아....”
***
해적을 찾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모아 쿠훌린과 에미야는 배를 타고 쫓아가기로 했다. 아무리 피해가 있었다지만 항구는 오고가는 사람이 많은 법이라 활기차 보였다. 쿠훌린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배를 찾는 동안 에미야는 항구 구석에서 조용히 있었다. 후드 때문에 아무도 에미야를 인식할 수 없었고 정말 유령 같았다. 쿠훌린이 돌아와서 에미야를 부르자 그제야 구석에서 나왔다.
“해적이 간 방향으로 간다는 배를 찾았어, 화물선인데 다행히 부업으로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도 돈을 받고 태워준다고 하더군.”
“항해는 며칠 정도이지? 승선하기 전에 보존식이나 필요한 물건을 더 사야 할 거 같은데.”
“아, 닷새 정도 간다니까, 지금 가진 거에 두 배면 되지 않을까?”
“그럼 다녀오도록 나는 여기 있을 테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장 정도는 같이 보자고.”
쿠훌린은 에미야의 손을 잡고 억지로 끌어당겼지만 에미야는 남아있겠다고 버텼고 결국 쿠훌린 혼자 장을 보러 갔다. 쿠훌린이 시간 맞춰 돌아와 에미야와 쿠훌린은 배에 탔다. 배가 출발하고 날씨가 좋아 사람들이 갑판으로 나와 바다를 보는데도 에미야는 갑판 아래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
“여긴 바다라 누가 보기라도 하면 도망칠 곳도 없다!”
“지금은 밤이라 올라오는 사람도 없고 누가 보면 룬마술로 기억 지울 테니까 걱정 마.”
모두 잠이 들 시간에 쿠훌린은 에미야를 끌고 갑판 위로 나왔다.
“답답하게 안에만 있으면 병 날 테니까, 밤에라도 나와서 신선한 공기 좀 마셔.”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여정에서 내가 아프면 곤란하긴 하겠지...”
에미야는 마지못해 나왔지만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말을 멈췄다.
“밤바다도 낮 못지않은 멋이 있지. 그리고”
“아름다워.....”
에미야는 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을 보며 중얼거렸고 오랜만에 표정이 풀렸다. 쿠훌린은 이 표정이 보고 싶었기에 기회를 보다 억지로 에미야를 끌고 나왔다. 에미야는 의외로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속마음을 말하면 얼굴을 붉히며 귀여운 표정을 짓겠지만 덤으로 안에 돌아가 버릴 테니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낮부터 하늘이 맑아서 밤이 되면 평소보다 별이 잘 보일 거 같았어. 이거 오랜만에 별을 읽어볼까?”
“점성술을 할 줄 아는가?”
“룬스톤으로 하는 쪽이 좀 더 특기지만 별을 읽는 건 드루이드의 기초지. 먼 미래부터 당장 내일 날씨까지 알 수 있으니까. 제자가 전혀 못 읽는 거도 우스울 테니 이번 기회에 수업에 넣자.”
그렇게 말하며 쿠훌린은 손가락으로 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 저 밝은 별 5개를 이으면 카시오페이아고, 카시오페이아에서 그대로 북쪽으로 가면 안드로메다. 북쪽을 알아보는 방법은 카시오페이아의 별들을 이은 연장선을 따라가면 북극성이 있어. 북극성이 북을 알 수 있는 지표니까, 별 보기뿐만 아니라 여행에서 길을 찾을 때도 도움이 되고.....”
별의 위치와 보는 법을 설명하며 쿠훌린은 그 별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을 몇 가지 알려주었다.
별자리는 구글 검색해보면서 북미 쪽 가을 하늘에 볼 수 있는 별을 썼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별자리는 이번 한번으로 끝나니까 틀렸으면 애교로 봐주세요!
오후 3시, 칼데아의 식당은 이 시간이 되면 티타임을 가지며 간식을 먹는 서번트들로 항상 활기차지만 오늘은 한층 더 분위기가 고조되어있었다.
“여어, 궁병.”
“아, 쿠훌린 랜서. 너도 티타임을 가지러 왔나? 오늘의 티푸드는 치즈케이크이다.”
“아니, 오늘따라 소란스러워 보여서 말이지. 통로를 지나가는데 밖에까지 소리가 다 들려서 무슨 일인가 하고. 케이크는 땡큐.”
살짝 놀려줄 심산으로 화려하게 꽃이 그려져 있는 접시에 소스로 데코레이팅까지 해서 건넨 케이크를 쿠훌린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먹어 에미야는 살짝 당황했다.
“...... 사양하지 않는군.”
“응? 너가 만든 건 뭐든 맛있는데 사양할 이유가 있나? 아 이거 치즈향이 진해서 술 하고도 맞을 거 같은데 이름이 뭐라고 했지?”
“하아... 치즈케이크다, 머릿속에 술밖에 안 들어 있다니 전형적인 글러 먹은 인간이군.”
“하루도 비꼬지 않으면 입에서 가시가 돋냐? 싸우러 온 게 아니니까 넘어가겠는데 그래서 무슨 일인데 이렇게 들떠있는 거야?”
“다 같이 러브레터를 쓴다고 하더군.”
“러브레터?”
칼데아에는 오락거리가 적다. 그러다 보니 서번트들 중에는 심심해하는 자도 많고 뭐만 있으면 일을 벌이기도 한다. 이번 일은 마스터가 보겠다고 들고 온 영화를 같이 본 서번트들이 차를 마시다 영화 이야기를 꺼내서 일어났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상대방에게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편지를 쓴 것이다. 편지로 주인공의 진심이 전해지고 커플이 맺어져서 해피엔딩, 그 부분이 인상 깊게 남았는지 그 부분을 강조했고 이야기는 다 같이 편지를 쓰는 방향이 되었다.
“러브레터라고 해도 연인이 있는 자들은 말 그대로 사랑의 편지를 쓰지만, 아닌 자들은 평소에 신세 지는 자한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더군. 많이 마스터에게 쓰는 모양이야, 마스터가 기뻐하겠어.”
“그럴까,”
“진심이 담긴 말을 누가 싫어하겠어.”
“그럼 나도 써볼까?”
쿠훌린은 그렇게 말하더니 모여있는 테이블에 갔다. 몇 마디를 주고 받다 에미야 쪽을 한 번 보고 웃었다. 분명 자신을 비꼬는 농담이라고 친거라 생각하며 빈 접시를 정리한다. 쿠훌린은 종이와 펜을 들고 다시 에미야 앞에 앉았다.
“저쪽에서 쓰면 될걸 왜 여기서?”
“막상 쓰려고 하니까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조언을 받자.”
“나한테?”
“어, 받는 사람이 현대인이라 네가 도움이 될 거 같아.”
현대인, 쿠훌린도 마스터에게 쓰려는 건가 에미야는 생각했다.
“흠, 그렇다면 도와주지. 일단 현대 편지의 기본 구성은 받는 이, 인사, 안부 묻기, 편지의 주 내용, 끝내는 인사, 보내는 이의 순서이다.”
“응”
“그런데 이곳은 칼데아, 거의 매일 보는 사람한테 안부를 물을 이유는 없으니 안부는 생략하는 게 좋겠군. 그렇다면 예의상 인사와 내용을 쓰고 만약 끝내는 인사를 쓰고나서 내용을 추가하고 싶거나 본문과 내용이 맞지 않아 따로 쓰고 싶다면 P.S.로 추가하도록.”
“본문 내용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뭐든 괜찮겠지, 진심이 전해질 수 있다면. 일단 상대를 칭찬 하는 거부터 시작하는 거도 괜찮겠지. 장점, 매력, 하지만 외견을 칭찬하는 건 추천 못 하겠군.”
“왜?”
“외견은 잘못하면 평가로 보일 수 있고 비교를 당하면 불쾌할 수도 있다. 굳이 외견에 관해 쓰고 싶다면 비유를 이용해 말해주는 게 좋을 거 같군.”
“예를 들면?”
“마스터의 눈에는 강한 의지가 보이지, 그 눈이 별빛과 같고 그걸 보면 전투에 임할 때 마스터에게 믿음을 가질 수 있다 같이?”
“오오, 확실히 마스터의 눈을 보면 같이 싸운다는 긍지가 생겨서 사기가 올라가지.”
쿠훌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남이 쓰는 편지를 훔쳐보는 무뢰한은 아니기에 에미야는 주위를 정리하다 모여있는 여성서번트들 쪽에 눈이 갔다. 여성 서번트들은 쿠훌린과 에미야 쪽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아까 종이를 받아오면서 웃는 거 같았는데 저들하고 무슨 대화를 했나?”
“별 이야기 안 했어, 그냥 누구한테 쓰냐고 해서 얼버무렸지. 칭찬 썼는데 또 뭘 쓰면 좋을까?”
“흠... 구체적으로 예시를 쓰는 거도 좋은 방법이다. 이전에 뭐뭐를 했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다, 어떤 행동에 감사한다 등.”
그 이후 몇 가지를 더 물어보고 쿠훌린은 조용히 편지를 썼다. 다른 서번트들도 집중하고 있는지 식당은 사각거리는 소리로 찼다. 그러던 중 덜컥하고 의자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너서리와 잭이 에미야에게 달려왔다.
“아저씨, 아저씨!”
“간식이 더 필요한가?”
둘은 고개를 저었다.
“편지를 써왔는데 받아주세요!”
“평소에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주고 우리를 챙겨주는 보답!”
둘은 그렇게 말하면서 에미야에게 편지를 건넸다. 에미야는 편지를 읽고 부끄러운 듯 웃었다.
“보답이라니 기쁜걸...”
“정말?”
“물론이지.”
“아아, 먼저 줘버리다니 최속의 영웅이란 이름이 울겠군.”
쿠훌린은 편지를 다 썼는지 종이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
“우리가 먼저 준 거야?”
“후후, 기뻐라”
쿠훌린은 일어나서 편지를 에미야에게 들이밀었지만 에미야는 쿠훌린의 행동을 이해 못 해 멀뚱히 편지봉투를 뿐이었다.
“너한테 주는 건데 왜 안 받아?”
“나한테?”
“응”
“마스터가 아니라?”
“거기서 왜 마스터가 나와?”
“현대인이라고.....”
“너도 현대인이잖아.”
에미야는 얼떨결에 받아 편지를 받아 읽기 시작했다. 에미야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편지로 얼굴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