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창가를 보지만 썬팅이 된 창문으로는 밖이 보이지 않는다. 손에 들고 있는 책을 모두 책장에 꽂고 손을 한 번 턴다.
"다 정리했으면 환기하게 창문 열고 쉬어도 된단다."
"네"
사서 말에 따라 A는 창문을 연다, 도서관에 들어와서 3시간 만에 밖을 볼 수 있었다. 창문으로는 뜨거운 햇빛 냄새가 나는 바람이 들어왔다. 창밖을 보니 짧은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해바라기밭이 있다. 그리고 해바라기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무심코 뚫어져라 쳐다보다 서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그 사람은 한 번 째려보더니 그 자리를 떠났다.
눈이 마주친 순간 A는 누군지 기억해냈다, B였다. 같은 반이지만 단 한 번도 대화해본 적 없는 아이. 딱히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다, 그저 어울리는 타입이 아닐 뿐이다. A는 우등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노는 학생도 아니다 하지만 조용한 학생이고 쉬는 시간에는 주로 책을 읽는다.
B는 어느 쪽에 가깝냐고 하면 노는 학생에 가깝다, 그렇다고 공부를 내던진 건 아니고 교과서 정도는 본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떠들고 점심시간에는 급식을 먹기 위해 제일 먼저 뛰어나간다. 같이 대화할 주제가 없다, 겹치는 취미도 취향도 없어 자연히 대화하지 않고 각자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기에 가버린 B에게 말을 걸지 않고 A는 그저 B가 떠나간 해바라기밭을 본다.
다음날, 창문을 열었을 때 같은 곳에 B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또, 눈이 마주쳤지만 이번에는 가버리지 않고 그곳에 서 있었다. 이틀이나 같은 곳에 있으니 A는 궁금해졌다. 사서에게 밖에 나가도 되냐고 물으니 쉬는 시간에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상하게 보이지 않게 지갑만 들고 도서관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넜다.
"왜 여기 있는 거야?"
"있든 말든 너랑 뭔 상관인데?"
대화가 끊겼지만, A는 그대로 B 옆에 있었다. 쨍쨍한 햇볕을 받던 중 A는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까, 너도 여기서 봉사 아냐?"
B는 인상을 찌푸렸다. 방학 봉사 신청서는 A가 걷어서 선생님께 냈다. 그 과정에서 몇몇 반 애들 걸 봐버렸는데 그중에 B가 자신과 같은 곳을 신청해서 기억에 남았다.
"..... 맞아"
"혹시 지금이 쉬는 시간이야?"
"아니"
"그럼 왜 여기 있어?"
B는 머뭇거리다 한숨을 쉬었다.
"사고 쳐서"
B는 A 담당 열람실 한 층 위 열람실에서 일했는데 그만 첫날 실수로 사서가 복구 중인 오래된 책에 음료를 엎질러 버렸다. 사서는 그걸 보고 화가 나 B한테 도서관에 오지 말라며 쫓아내 버렸다고 한다. B 나름 변상하기 위해 찾아보니 그게 꽤나 오래돼 그 판은 이제 구할 수 없는 서적이었다. 덕분에 봉사활동에 나오지 않아도 됐지만, 차마 부모님한테 그 사실을 말할 수는 없어 매일 원래 봉사해야 할 시간에 집을 나온다.
“그럼 놀러 가거나 다른 곳에 가도 괜찮지 않아?”
왜 굳이 이곳? 다른 곳을 어슬렁거리다 부모님과 마주치면 곤란하다. 그나마 도서관 앞이라면 어슬렁거리다 마주쳐도 잠깐 쉬러 나왔다고 거짓말을 하면 된다.
얼굴에 하얀 꽃이 핀 청년은 푸른 마술사가 보는 앞에서 마술을 시전 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청년, 에미야 시로는 마술사 쿠훌린의 제안에 따라 그의 제자가 되었다. 제자가 되어 마술사가 되면 기생꽃이 떨어져 나가고 쿠훌린은 그 꽃을 얻을 수 있는 윈윈 제안이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에미야가 제자가 된 지 일주일, 꽃 사고가 없었다면 그의 평범한 삶에서는 절대 만날 일 없는 위대한 마술사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거기까지”
쿠훌린의 말을 듣고 청년은 손을 멈췄다.
“으으음... 잘 안 되네.”
“부족한 학생이라 미안하군.”
“아니, 네가 부족한 게 아니라 내가 가르치는 데 문제가 있는 거야.”
아무리 봐도 자신이 부족해서 잘 안 되는 상황인데 저 마술사는 뭐라고 하는 건가, 오히려 에미야가 의문스러워졌다.
“뭔가 보조도구가 있는 게 좋으려나... 에미야!”
“뭐지.”
“마침 저녁 먹을 시간도 가까워졌겠다, 수련은 이쯤에서 끝내고 저녁 준비해줘. 만드는 사이 난 좀 숲에 갔다 올게.”
“아아”
“식사가 완성될 때쯤에 맞춰서 돌아오겠는데 만약에 내가 늦는다고 해도 절대로 숲으로 찾으러 오지 마.”
저녁을 기대한다는 말을 하고 쿠훌린은 숲으로 갔고 에미야는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모두 죽고 혼자가 되었을 때는 요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쿠훌린이 오고 자신은 둘째 치고 스승을 굶길 수는 없으니 다시 요리를 하게 되었다. 에미야가 처음 차려준 식사를 보고 쿠훌린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맛을 보고는 맛있다는 감탄사밖에 하지 않았다. 호들갑을 떨며 칭찬해 에미야는 오히려 쑥스러우면서도 기뻤다. 혼자 남게 된 이후 오랜만에 느끼는 기쁨이었다.
그렇게 에미야가 식사를 하고 생활을 위한 나머지 일은 쿠훌린과 나눠서 했다. 하지만 물건을 구하러 외부에 가는 건 쿠훌린의 몫이었다. 에미야의 얼굴의 꽃이 다른 사람한테 옮기라도 한다면 다시 마을 하나가 사라진다는 끔찍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 그러니 에미야는 절대 마을 밖을 나가지 않았다.
요리를 하던 중 에미야의 손이 멈췄다. 있을 줄 알았던 허브가 다 떨어졌다. 이 허브는 메인 디쉬의 향을 내는데 중요한 재료라 뺄 수 없다. 사실 뺀다 해도 맛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 어중간한 요리는 에미야 본인이 납득할 수 없었다.
옆 마을에 간다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지만 지금 쿠훌린은 없다. 옆 마을에 가는 것 외의 방법은 숲 입구에 피어있는 야생 허브를 따오는 것이다. 쿠훌린이 숲에는 절대 오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입구 근처일 뿐이니 괜찮다고 생각하며 에미야는 숲으로 갔다.
원래 마을 사람들이 자주 허브를 따던 곳이지만 따러 올 사람이 모두 없어져 숲 입구에는 허브가 무성했다. 혹시 다른 풀이 섞여 있을까 에미야는 풀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고 신중하게 땄다. 그러던 중 에미야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
숲이 소란스럽다. 보조도구를 만들 재료를 찾으러 숲에 온 쿠훌린은 몇 가지 소재를 구해 돌아가려는 참에 느꼈다. 느낌이 좋지 않아 쿠훌린은 소란의 중심이 되는 곳을 찾아갔다.
숲 중앙, 요정들이 모여 있었다, 무언가를 둘러싸고. 뭐가 즐거운지 악기와 같이 아름다운 웃음소리를 내며 자기들끼리 대화했다. 쿠훌린은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갔고 요정들이 둘러싸고 있는 게 무엇인지 확인했다.
“그건 내 거야.”
요정들은 표정을 찌푸리며 쿠훌린을 쳐다보았다. 요정들이 둘러싼 건 정신을 잃은 에미야였다. 어머, 이렇게 달콤한 냄새가 나는데, 독점하겠다고? 웃음소리가 멈추고 한 요정이 말했다. 꽃의 향기는 마력이 많은 존재일수록 강하고 달콤하게 느껴진다. 요정이 느끼기에 에미야는 필시 꿀이 넘쳐흐를 거 같은 강렬한 존재다.
“먼저 발견해서 키우고 있는 중이다. 도중에 너희가 가로채 갈 만한 게 아냐.
가로챈다면 숲 채로 전원 다 태워주마.“
요정들은 겁을 먹거나 불만에 찬 표정을 짓고는 모두 그 자리를 떠났다. 요정이 떠난 자리에서 쿠훌린은 에미야를 안아 들었다.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쯤, 에미야는 일어났다.
“쿠...훌린...?”
“오, 일어났냐.”
“네가 왜....”
“하아, 내가 절대 숲에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온 거야?”
“숲....? 아, 허브를 따러....”
“허브 따러 숲까지 온 거야?”
“숲에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아아~ 근처 정도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거 같은데 근처도 안 돼. 너 요정들한테 납치돼서 숲 안으로 끌려갔다고?”
“뭐?”
요정이란 단어에 에미야는 어리둥절해졌다. 쿠훌린은 왜 요정들이 에미야를 데리고 갔는지 설명해주었고 에미야는 표정이 어두웠다.
“설명을 안 해준 내가 잘못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응.....아아!!”
“갑자기 소리는 왜 질러, 놀래서 떨어트릴 뻔했잖아.”
“따 둔 허브를 두고 왔어...”
“아...”
요정한테 납치당한거보다 요리재료를 두고 왔다는 사실에 더 충격받은 얼굴을 한 에미야를 보며 쿠훌린은 한숨을 쉬었다.
“허브는 내가 챙겨뒀으니까 걱정 마.”
에미야가 안도하자 쿠훌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납치까지 당하면서 재료를 구한 요리는 기대해도 좋은 거지?”
“물론이다.”
첫편 제목이 바뀌지는 않았는데 2화가 올라오는데 백만년쯤 걸렸네요ㅋ 사실 써두긴 전에 써뒀는데 어째서인가 올리지를 않아서.... 3화에서는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엔키두가 권한 산책에 응한 것도 숲의 많은 갈림길에서 그 길을 선택한 것도.숲에 들어간 순간 그 길을 가면'무언가'있을 것이란 감이 길가메시는 있었다.평소라면 무시하고 다른 곳을 갈 수 있었지만,그날따라 늙은이들한테 시달린 상태라'무언가'를 보러 갈 마음이 들었다.엔키두는 무엇 하나 묻지 않고 그저 길가메시를 따라갔다.
'무언가'에 가까워지질 수록 불쾌한 쇠 냄새가 진해졌지만 길가메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그리고 목적지에 다다르자 길가메시의 시야에 들어온 건 널려있는 시체와 피바다.감히 왕의 눈에 더러운 걸 보이게 한 자는 왕 스스로 처단해줘야 마땅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왜냐하면 그곳에서 살아있는 자는 피를 뒤집어쓴 소년 단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비참하네....”
그 광경을 보며 엔키두가 중얼거렸다.비참하다 그리고 불쾌하다.길가메시는 불쾌했다,그 광경이 아니라 시체에 둘러싸여있는데도 울지 않는 소년이.소년의 눈은 초점을 잃고 공허한 색을 띄고 있었다.자고로 아이는 그 나이에 맡게 행동하며 깊은 걱정은 하지 않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그게 길가메시가 생각하는 아이라는 것인데 눈앞에 소년은 그 어느 하나에도 맞지 않은 상황이었다.그렇다고 해도 길가메시가 행한 행동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변덕이었다.
“길가메시?”
길가메시는 시체의 길을 성큼성큼 걸어 소년에게 갔다.그리고 소년의 몸에 묻은 피를 신경 쓰지 않고 소년을 안아 들었다.그러자 소년은 처음으로 표정 변화가 일어났지만 길가메시는 그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아이를 궁으로 데리고 갈 거야?”
“아아”
“드문 일이네 내일은 눈이라도 오려나?”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장에라도 목이 떨어졌을 발언이지만 엔키두였기에 길가메쉬는 그저 한 번 째려보았고 엔키두도 그 눈에 미소로 대답했다.
왕이 궁에 도착한 걸 본 신하들은 평소처럼 마중을 나가다 왕의 모습을 보고 소리 질렀다.안고 있는 소년은 둘째 치고 왕의 옷이 피투성이였기에 왕이 어딘가 다쳤는지 걱정했지만,길가메시는 그저 소년을 맡기며 깨끗이 씻기고 새로운 옷을 주라 했다.
소년이 시녀들의 손에 이끌려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나왔을 때는 왕도 이미 묻은 피를 닦아내고 새로운 의상을 몸에 걸치고 옥좌에 앉아 있었다.영문도 모른 채 왕의 옥좌 앞에 세워진 소년은 긴장했는지 옷자락을 쥐었다.
“아까 처해있던 상황이 무슨 상황이었는지 설명해라.”
왕의 눈빛은 침묵도 거짓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고 어린 소년이라도 그걸 파악할 수 있었다.
“............여행 중에 강도의 습격을 받아서....모두 죽었는데.....지켜줘서....”
소년은 힘겹게 말을 했다.목소리가 크지 않아 잘 들리지 않았지만 중요한 단어는 들려 어떤 걸 말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돌아갈 곳은 있느냐?”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흐음,그럼 여기서 지내도록 허락해주지.”
"왕이시여 그게 무슨...!"
길가메시의 한마디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자가 술렁였다.
"출신도 모르고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아이를 거두신다니 농이 지나치십니다."
"왕의 결정을 반대하다니 그 잘 돌아가는 혀에는 이제 미련이 없나보구나."
길가메시의 위협에 모두 입을 다물었고 알현장 내는 조용해졌고 그 조용함 안에서 왕만이 유일하게 말을 했다.
“오늘부터 내 시중으로 쓰겠다.”
2.
“아처!”
물통을 들고 가던 소년은 아처라는 말에 반응해 뒤를 돌았다.말을 한 자는 궁의 시녀 중 한 명이고 이전 복도 청소를 할 때 소년을 도와주어 소년 안에서 좋은 사람이라 인식된 자이다.
“물 길어가는 건 됐으니까 왕께 가봐 사냥을 나가신다는 거 같아.”
“네”
아처는 물통을 시녀에게 건네고 뛰어서 궁 뒤뜰로 갔다.궁 부엌을 통해 뒷문으로 가면 금방이다.
“늦었군.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왕이시여.”
숨을 고르는 소년을 보면 누구라도 소년이 전언을 듣자마자 뛰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길가메시도 그걸 알 수 있었기에 더는 소년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괜찮다,그보다 오늘도 너의 솜씨를 기대하마, ‘아처’.”
길가메시가 시중으로 쓰겠다 결정한 후 길가메시는 소년에게 이름을 물었지만,소년은 답하지 않았다.신하들이 소리치며 매도해 소년은 울거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길가메쉬도 석연치 않았지만 이름은 넘어가기로 했다.그렇게 소년은 이름 없는 자가 돼서 그저 애매한 지칭으로 불렸다.
이름 없는 소년은 왕의 시중이 되기 위해 교육을 받았다.청소,빨래,왕의 시중을 드는 법,그리고 싸우는 법.왕의 곁에 있는 자 만약에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배워야 했다.소년은 재능이 없었다,그렇다고 못 하는 것도 아니어서 무언가를 시키고 가르치면 어느 정도 했지만 그걸 잘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그러나 딱 한 가지,궁술만은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실력을 보였다.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발판이 불안정해도 소년의 화살은 목표 정중앙에 맞았다.그에게 활을 가르치던 스승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혀를 둘렀고 궁 최고의 활 솜씨를 가졌다는 소문이 났다.거창한 소문에 왕은 직접 소년의 활을 보러 왔고 그것이 진실임을 확인하자 왕은 소년에게‘아처’라는 칭호를 주었다. ‘아처’말 그대로 궁병이라는 칭호를 얻은 소년은 자신의 칭호를 자랑스러워했고,주위도 그를 부러워했다.
이후 왕이 사냥을 나갈 때면 매번 아처를 데리고 나가 아처의 활 솜씨를 구경했다.오늘 사냥에도 아처는 어김없이 불려갔고 왕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소년은 처음으로 날고 있는 새에게 화살을 겨누었다.여태까지는 가지에 앉아 쉬는 등 움직이지 않을 때를 노려 쐈으나 자신의 실력을 믿고 도전해 보았다.잡고 있던 활시위를 놓자 화살이 날아가 새의 복부에 정확하게 맞았다.화살이 맞은 걸 보는 아처는 새가 떨어진 지점으로 뛰어갔고 화살의 맞은 새를 회수했다.왕에게 보고하기 위해 활을 쏘았던 곳으로 되돌아가자 마침 왕 혼자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왕이시여,이걸 봐주세요!제가 처음으로 날아가는 새를 잡았습니다.”
“그것참 훌륭하군.”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아처를 보고 왕은 아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다 훌륭한데 한 가지만 고치면 더 좋을 거 같아.”
“네?”
“어린아이는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
왕의 말에 아처는 당황하였다.왕에게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지금 보인 웃음도,행동도 그 나이 때 아이들이 할 만한 행동이지,그러나 격식은 아냐.다른 자의 눈이 있을 때까지 그러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둘이 있을 때 정도는 편하게 대해라.그게 그 나잇대의 행동이야.”
“그,그럼.....길가메시님?”
“별 차이 없어 보인다만,호칭도 때고 더 편하게 부르거라.”
아처는 우물쭈물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길가메시”
아이가 수줍게 왕의 이름을 부른다.
3.
“......가메시,길가메시”
오랜만에 소년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꿈을 꾸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길가메시는 눈을 떴다.침대 옆에서 자신을 부른 자는 꿈속의 아이였다.그러나 아이는 꿈에서 본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피의2/3가 신인 몸이라 만난 때부터 거의 나이를 먹이 않은 길가메시와 다르게 만났을 때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던 키는 자신을 훌쩍 넘고 동글동글한 얼굴은 볼살도 빠져 각이 져 날렵한 선이 생겼다.그 외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고 이제 이 자가 그 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부분은 특유의 백발과 짙은 피부색뿐이었다.아이를 처음 거둔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고 아이는 훌륭한 성인이 되었다.
"아침이다,일어나서 얼른 준비하지 않으면 정기 회의에 늦는다."
"....흥,그런 번거로운 일,네가 가서 처리하면 될 것을 굳이 이 몸이 가서 지루한 이야기를 들어줄 필요는 있나?"
"대신들이 아무리 토의하고 의견을 듣고 왕이 최종결정을 내린다,그런 시스템인데 내가 처리한다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남자를 보고 길가메시는 방금까지 꾸던 꿈이 기억났다.어린아이 같지 않아 불쾌했던 아이,그 아이의 나잇대에 맞는 모습을 보려고 이것저것 총애를 주어 결국 보고 싶던 모습을 보았다.그런데 더 나이를 먹더니 아이는 바뀌었다.